현대자동차의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대회용 차량인 ‘i20 Coupe WRC 랠리카’가 지난해 독일 랠리에서 질주하는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2012년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신차 공개 내부 행사. 번쩍이는 신차들 뒤쪽에 놓아둔 월드랠리챔피언십(WRC)용 시제작 차량 운전석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올라탔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경주용 차에는 에어컨이 없다. 정 수석부회장은 연구소의 테스트용 트랙에서 셔츠가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30분이 넘도록 이 차를 직접 몰았다.그로부터 2년 뒤인 2014년 현대차가 WRC에 재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첫 대회인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출전한 차 2대 모두 중도 탈락했다. 정 수석부회장의 WRC에 대한 염원을 알기에 팀원들도 걱정이 앞섰지만 그는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써 달라”며 오히려 WRC팀을 격려했다. 현대차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이 기억하는 인상적인 두 장면이다.
다시 5년이 흘러 올해 WRC에서 현대차는 일본 도요타를 누르고 제조사 부문 종합우승을 따냈다. WRC는 포뮬러원(F1)과 함께 양대 자동차 경주대회다. 비양산 차로 경주용 서킷을 달리는 F1과 달리 WRC는 양산차를 개조해 도로와 산길, 진흙탕길, 눈길 등의 험로를 달린다.
WRC에는 일정 대수 이상 생산된 차를 쓰지만 속을 뜯어 보면 양산차와 완전히 다르다. 엔진만 해도 알루미늄을 깎아 몸체를 만드는 식으로 무게를 줄인다. 대회에서는 차가 점프했다 떨어지고 장애물, 돌덩이와 충돌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차를 개조하고 팀 운영을 하는 데만도 매년 수백억 원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WRC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WRC를 위해 개발한 기술이 고스란히 현대차의 기술력으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특히 극한 상황을 가정하고 만든 차체·부품 강성과 동력 성능 및 제동력 확보, 경량화 등은 고급차를 만드는 데 값진 데이터가 된다. WRC에서의 우승은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폭스바겐, 도요타, 시트로엥 등 유수의 완성차 업체가 WRC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양산 모델을 쓰는 랠리카 경주의 경우 과거 유럽에서는 ‘일요일에 승리하면 월요일에 차가 팔린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