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기아자동차 미국 조지아주 공장의 생산 10주년 기념식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과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지사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텔루라이드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기아자동차 제공
“겉모습이 좀 투박해 보이죠?”현대·기아자동차의 연구개발(R&D) 기지인 경기 화성시 남양연구소 주행시험장에서 17일 마주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텔루라이드는 확실히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차량 개발을 총괄한 박병철 중형PM센터장(상무)은 외관과 내부 디자인 모두 ‘러기드(튼튼하고 강인)’한 느낌이 이 차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기아차가 북미 시장 전용으로 개발해 지난해 2월 출시한 텔루라이드는 미국에서 물량이 부족해 딜러가 우리 돈 500만 원에 육박하는 ‘웃돈’을 받으며 판매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13일(현지 시간)에는 기아차 최초로 자동차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꼽히는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텔루라이드는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5만8000여 대가 팔리면서 기아차 전체의 실적 개선을 이끌기도 했다. 다만 현재로선 국내 출시 계획은 없다.
2015년 공식적으로 이 차의 개발에 착수한 남양연구소 연구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철저한 현지화였다. 디자인부터 내부 공간 구성까지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미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차를 만들라는 것이다. 목표 고객층은 도시에 살면서 연간 15만 달러(약 1억7000만 원) 안팎의 소득을 올리고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40대 부부. 연구원들은 포드와 도요타 등 경쟁사의 SUV로 미국을 5000km가량 횡단하면서 미국 가정에서 생활하며 자동차 문화를 체험하기도 했다.
퇴근길에는 다른 집 아이까지 카풀 개념으로 함께 태워 오는 모습 등은 실내 공간 구성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박 상무는 “한국 아이들 못지않게 요란한 미국 아이들이 서로 내 것이라면서 싸우지 말라고 컵 홀더와 USB충전단자를 충분히 넣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갈림길은 아무래도 디자인이었다. 유례없는 ‘북미 전용차’의 디자인 방향성을 놓고 진통을 거듭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우리 눈이 아니라 미국 고객의 눈으로 보라”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지침이었다. 텔루라이드는 미국 디자인 센터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면서 지금과 같이 강인한 인상의 디자인으로 가닥을 잡았다.
17일 주행시험장에서 이뤄진 조수석 시승에서는 시속 200km를 넘나들 때도 안정적인 주행감과 비교적 커다란 버튼을 중심으로 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손이 큰 미국 고객을 위한 인테리어다. 박 상무는 “텔루라이드의 성공은 미국에서 연간 110만∼120만 대가 팔리는 중형 SUV 시장을 공략한다는 의미는 물론이고 기아차가 예전보다 더 크고 비싼 차를 팔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화성=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