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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똑똑해지는 자동차의 ‘뇌’…뜨거워진 내비게이션 전쟁

서형석 기자
입력 2020-05-01 16:47:00업데이트 2023-05-09 16:42:13
자동차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은 이제 없어선 안 될 필수품이 됐다. 운전면허시험에서 내비게이션 조작과 관련한 내용은 다뤄지지 않지만, 운전자 누구나 새 차를 구입하면 내비게이션 사용을 우선적으로 익힌다. 과거에 두꺼운 지도책 하나로 전국을 누볐던 운전자들은 이제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모습을 상상조차 못한다.

모두의 길잡이로 자리 잡은 내비게이션이 진화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함께 자동차의 ‘뇌’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월 25일부터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의 운전자 안전 의무를 강화한 ‘민식이법’이 시행되면서 스쿨존에서 안전운전을 돕는 도구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완성차 업계는 신차 출고 때 기본으로 제공하는 ‘순정 내비게이션’(순정 내비)을 미래차 시대 실현을 위한 필수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처음 국내에 소개된 내비게이션은 당시 가격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호화 옵션’의 상징이었다. 완성차 회사들도 고급차종을 시작으로 순정 내비를 제공하며 시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순정 내비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최신 지도정보를 운전자가 일일이 내려받아 USB메모리나 SD카드와 같은 이동식 저장매체에 옮긴 뒤 그것을 차량 내비게이션에 꽂아야만 최신 정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제때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실제 도로와 내비게이션의 정보가 불일치하는 경우도 많았다.

2009년 아이폰3GS, 이듬해 갤럭시S 등 스마트폰의 보급은 ‘스마트폰 내비’로 내비게이션 시장의 주도권이 넘어오는 계기가 됐다. SK텔레콤의 ‘T맵’을 필두로 KT와 네이버, 카카오 등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기반의 자체 내비게이션을 앞세워 시장에 진입했다. 별도로 차량 송풍구나 유리창에 거치대를 설치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통신사들은 자사의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 가입자에게는 데이터통화료를 면제하면서 고객을 확보했다. 일일이 지도정보를 갱신하지 않아도 전국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최신 교통정보, 지형지물정보를 쓸 수 있는 건 큰 매력으로 꼽힌다.

하지만 순정 내비 진영도 최근 2년 간 환골탈태하며 운전자들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다. 롱텀에볼루션(LTE) 등 통신망과 연결된 ‘커넥티드카’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운전자가 따로 신경 쓸 필요 없이 차량 스스로 지도, 교통상황 등을 최신 상태로 유지하면서, 최적경로 분석과 소요시간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졌다. 김창수 현대자동차 내비게이션 개발팀장은 “과거의 교통정보 자료와 현재 교통정보를 함께 활용하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과 달리 현대·기아차 순정 내비는 전국 150여만 대 커넥티드카들로부터 익명으로 수집한 실시간 운행자료를 기반으로 한다”고 소개했다.

자동차회사와 통신사들의 내비게이션 경쟁은 ‘미래차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보 경쟁이다.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앞둔 상황에서 가장 정확한 도로정보, 운전자의 운전행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좋은 성능을 발휘하는 기반이 된다. 황금연휴나 명절 때면 내비게이션에서 수집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고 취약지점을 분석해 교통사고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SK텔레콤 T맵이 민식이법 시행을 계기로 어린이 목소리를 활용한 스쿨존 안전운행 경고와 스쿨존 경로 회피 기능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최근 테슬라코리아는 교통정보 등 운전 중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직접 운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기간통신사업을 신고했다.

내비게이션 업계는 성능 개선뿐 아니라 운전 중 교통안전도 중요하게 고려한다. 운전자가 내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하다 자칫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서는 운전 중 내비게이션을 포함해 어떤 영상표시장치도 조작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는 건 허용하지만, 안전을 위해 시선의 이동 반경과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자동차회사들은 “순정 내비를 설계할 때 운전자의 운전 중 행태, 운전자의 자세 등을 분석해 운전자에게 가장 적합한 크기와 디자인, 메뉴구조를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화면의 가로와 세로 길이 비율이 4대 3 또는 16대 9가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올해 출시된 제네시스 G80, 기아차 쏘렌토 등에는 차량의 대시보드(계기판) 위에 가로로 길쭉한 형태의 내비게이션이 설치됐다. 눈동자만 살짝 돌려도 주행경로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내비게이션이 단지 길 안내에 그치지 않고 차량의 첨단안전장치, 공조기능 등 여러 기능들과 연동돼 편의성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스쿨존을 지날 때나, 경로 도중 갑자기 정체가 발생하면 차량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게 가능하다. 전방 10km 지점에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다른 경로를 제시할 수도 있다. 첨단 카메라와 센서를 장착한 차량일지라도 그 자체로는 현재 내 차량의 주변만 파악할 수 있지만, 통신망에 연결된 순정 내비와 연동하면 10분 뒤의 상황까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김 팀장은 “자동차와 내비가 한 ”처럼 동작하는 건 스마트폰 내비에는 없는 순정 내비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와 현대엠엔소프트가 내비게이션 기술과 지도 정보를 확보하고, 현대모비스는 다양한 형태의 내비게이션 기기를 만든다. 운전석 전면 유리창에 주행정보를 띄워 운전자의 주의 분산을 막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실제 도로 위에 3차원으로 정보를 띄우는 증강현실(AR) HUD까지 개발했다.

앞으로 내비게이션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만드는 구글과 애플이 각각 안드로이드오토, 카플레이 등의 서비스를 내놓으며, 차량의 주요 기능들을 스마트폰 OS로 끌어들이기 위해 시장 공략에 나섰다. 내비게이션을 매개로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순정 내비와 스마트폰 내비 진영 모두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김 팀장은 ”내비게이션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확한 길 안내와 안전운전을 돕는 것“이라며 ”내비게이션 기술이 미래 자율주행 사회를 이끌어 가는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