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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만의 응답: “현대차, 잘하고 있어”
2018년 3월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 모터쇼. 현대차는 행사장 건물 외벽에 아이오닉과 코나, 넥쏘 등 전기차를 홍보하는 대형 광고를 내걸었다. 그런데, 광고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차량이 아닌 도발적인 문구였다. “일론, 이제 당신 차례야.(Your turn, Elon.)”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이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그럴 만하다. 테슬라는 이미 북미에서 전기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대차그룹(이하 현대차)은 10위 안팎으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광고에 담긴 차량들 디자인도 테슬라에 비해 어딘가 촌스러워 보였다. 당시 현대차가 내연기관 차량의 뼈대를 가져다가 전기차를 만들다보니 기존의 자동차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현대차를 언급했다. 미국의 올해 1분기(1~3월) 전기차 점유율 순위 관련 게시물에 “현대차, 잘하고 있다(Hyundai is doing pretty well)”는 댓글을 단 것. 게시물에 따르면 테슬라는 1분기 미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75.8%로 독보적인 1위를 기록했다. 2위가 9.0%의 현대차였고, 폭스바겐(4.6%)과 포드(5.4%)가 뒤를 이었다. 1, 2위의 격차는 컸지만, 머스크의 ‘칭찬 댓글’로 현대차가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25일 ‘미안해요 일론 머스크, 현대차가 조용히 전기차 시장을 지배 중입니다(Sorry Elon Musk. Hyundai Is Quietly Dominating the EV Race)’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 술 더 떴다.
블룸버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전기차는 테슬라 공장에서 나오고 있지 않으며, 모든 시선은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EV6에 쏠려 있다”고 했다. 이어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에서 선보인 전기차들이 순식간에 포드·닛산·쉐보레 등 주요 전기차 모델을 제치고 5월까지 총 2만1467대의 판매기록을 올렸다”며 “같은 기간 미국 포드의 순수 전기차 머스탱 마하-E의 판매량(1만5718대)을 가볍게 뛰어넘었다”고 덧붙였다.
리서치기관 에드먼즈의 애널리스트 조셉 윤 부사장은 “그들(현대차·기아)이 EV(전기차)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솔직히 주변 딜러들이 재고를 확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테슬라의 압도적인 점유율보다 현대기아차의 빠른 성장세에 주목한 것이다.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머스크의 칭찬은 진심이었을까?
현대차가 분발하고 있지만, 테슬라와의 점유율 격차가 상당한 상황. 경쟁사에 대한 머스크의 칭찬은 과연 ‘진심’이었을까.
일각에서는 이번 언급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달 2일 경영진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경기가 나빠질 것 같아 직원 10%를 줄이겠다”고 했다. 곧바로 한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포드는 사람 더 뽑는다는데? 달나라 잘 다녀와 머스크”라고 비꼬았다.
한 달 동안 꿍해 있던 머스크가 이번에 포드의 1분기 미 전기차 점유율(5.4%)이 4위로 쳐진 것을 보고, 이때다 싶어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현대차를 이용해서 말이다. ‘지나친 해석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친노조 성향인 바이든 대통령과 무노조 경영을 내세우는 머스크는 그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미 CNBC는 지난달 “대통령의 발언은 그간 반복해서 바이든을 비판해 온 머스크와의 가장 최근의 마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머스크의 칭찬이 진심이든 아니든 최근 현대차의 해외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2018년 1493대에서 2020년 7410대, 지난해 1만9590대로 늘었다. 올해 5월까지는 2만 대가 넘는 전기차를 미국에서 팔았다.
내연기관 차량도 잘 팔렸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와 기아(제네시스 포함)는 미국에서 61만2184대를 판매했다. 미 제너럴모터스(GM)와 일본 도요타, 미 포드, 스텔란티스에 이은 다섯 번째 실적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일본 혼다를 약 3만 대 차이로 6위로 밀어낸 뒤 올해 그 격차를 더 벌렸다. 미국에서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의 경쟁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물론, 전기차도 포함이다.
현대차는 올해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전망하고 있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2분기(4~6월) 각각 2조1399억 원, 1조71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합계 영업이익이 4조 원을 돌파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넘어설 전망이다. 현대차·기아의 올해 전체 영업이익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는 삼성만큼이나 친숙한 현대차. 해외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해외 주요 언론들을 살펴봤다.
2018 제네바 모터쇼에서 현대차가 건물 외벽에 설치한 대형 광고(왼쪽 사진). ‘일론, 이제 당신 차례야’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눈에 띈다. 4년 넘게 흘러서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반응을 보였다. 머스크는 미국의 올해 1분기 전기차 점유율 순위 관련
트위터 게시물에 “현대차, 잘하고 있다”는 댓글을 달아 관심을 모았다(오른쪽 사진). 트위터 캡처
● “저렴하지만 흥미롭지 않은 차”
3~4년 전만해도 현대차에 대한 해외 평가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3월 기사에서 “현대차는 일본, 서구 경쟁사들보다 저렴하면서도 흥미롭지 않은 차량을 대량으로 생산해 세계 5위의 완성차 업체에 올랐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평했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현대차가 인건비 상승으로 더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우려했다. 현대차가 전체 차량 중 40%를 한국에서 생산하는데, 국내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가격 경쟁에서 뒤쳐지게 됐다는 분석이었다.
이는 현대차의 성장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폭스바겐은 연 매출의 6%를, 도요타는 4%를 연구개발(R&D)에 사용하는데 현대차는 3%만을 쓰고 있다”며 “일부 분석가들은 (현대차의) R&D 부족이 인건비 때문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비용 상승과 소비자들의 기대치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고객들은 여전히 우리 차가 폭스바겐보다 저렴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현대차 수석 전략가의 코멘트를 인용했다. ‘무색무취의 저가 자동차 제조업체’가 현대차의 이미지였다.
실제로 현대차는 해외 진출 이후 고급차로 평가받지 못하면서 주로 일본, 미국 등의 중저가 차량들과 경쟁했다. 2008~2009년 미국 시장에서의 현대차 점유율은 4% 수준에 불과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위주로 재편된 미국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고전했다. 2018년 현대, 기아차의 연간 영업이익은 3조 원대로 추락했다. 올해 1개 분기에 올린 영업이익을 1년 동안에도 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2019년 3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현대차가 일본, 미국 등의 완성차 업체들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높아지는 인건비와 낮은 연구개발 비용 등을 문제로 꼽았다.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캡처
● 방탄소년단(BTS)이 선보인 현대차
2018년 11월, 분위기가 바뀌었다. 현대차가 2018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머스크를 소환하고 8개월이 흐른 뒤 ‘2018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가 열렸다. 이곳에서 현대차는 8인승 SUV 차량인 ‘팰리세이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SUV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가운데 내놓은 현대차의 야심작이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수석총괄부회장)도 행사를 참관했다.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2016년 4월 개발팀은 3주 동안 경쟁사 SUV 차량의 제일 뒤쪽 3열 좌석에만 앉아 미국 대륙을 돌았다. 디자이너를 데리고 미국 곳곳을 다니기도 했다. 북미시장 고객이 마트에서 짐을 어떻게 싣고 내리는지, 3열 공간의 크기가 왜 충분히 확보돼야 하는지 등을 함께 살피면서 공감대를 조성했다.
현대차가 3열 좌석에 집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 SUV 잠재 고객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현대차가 팰리세이드 개발 전 수요층에 대한 사전조사를 했는데, 개발팀은 ‘가족을 위해 공간이 넓은 SUV를 찾는 아빠’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다자녀인 집이 많고, 여행 등 여가활동이 늘면서 사람들이 널찍한 3열 공간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인 편이었다. 현대차는 방탄소년단(BTS)을 팰리세이드 글로벌 브랜드 홍보대사로 선정하고, 2019년 6월 미국에 선보였는데, 출시 첫 달에 383대가 팔렸다. 이후 7월 4464대, 8월 5115대로 판매량이 수직 상승했다.
비슷한 시기에 기아가 출시한 대형 SUV 텔루라이드까지 미국에서 흥행하면서 현대차는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2019년 미국에서 5만8604대가 팔린 텔루라이드는 미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20 북미 올해의 차’ SUV 부문에서 우승했다. 후보였던 팰리세이드와 링컨 애비에이터를 제쳤다. 기아는 텔루라이드 인기 덕분에 2019년 매출(58조1460억 원)이 시장전망치를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3.6% 뛴 2조97억 원이었다.
현대차가 2018년 11월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에서 8인승 SUV 차량인 ‘팰리세이드’를 처음으로 선보이고 있다. 현대차 제공
● 달라진 제네시스, 달라진 현대차 이미지
펠리세이드 출시 이후에 나온 제네시스도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현대차는 2007년 말 럭셔리 세단인 제네시스를 처음 선보였다.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다. 4년 동안 열심히 연구해 만들었지만 소비자들은 크게 감동받지 못했다. ‘악플’보다는 ‘무플’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고급 승용차로 내세우면서도 BMW 5시리즈보다 1만 달러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애매한 가격 포지셔닝이 소비자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현대차는 2015년 말 도요타의 렉서스처럼 제네시스를 독립 브랜드로 발표했다. 이 역시 처음에는 흥미를 끌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어르신차’, ‘회장님차’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가 2020년 1월 현대차가 GV80을 시작으로 G80, G70, GV70을 잇달아 선보였는데, 세련된 디자인으로 호평이 쏟아졌다. 현대차에 대한 ‘외모 지적’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5년 530대가 판매됐던 제네시스의 글로벌 연 판매량은 2020년과 지난해 각각 10만 대와 20만 대를 넘어섰다. 특히 미국에서 잘 팔렸다. 지난해 제네시스의 미국 판매량은 4만9621대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혼다의 고급차 브랜드 아큐라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물론, 차 디자인이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이 같은 판매량은 품질이 기반이 됐다. 제네시스는 올해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156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렉서스(157점)와 캐딜락(163점)을 제쳤다. 이는 1987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품질조사다. 고객이 차량구입 후 3개월 동안 경험한 품질불만 사례를 집계해 100대당 불만건수를 점수로 나타낸다.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프로골프 선수인 타이거 우즈는 지난해 2월 주행 중 9m 언덕 아래로 구르는 전복 사고를 당했다. 차량 내부가 거의 파손되지 않았고, 우즈의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탔던 차 모델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 ‘골프 황제’가 타고 있던 차가 GV80이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GV80, G80, G70, GV70. 현대차 제공
● ‘유니크’한 전기차 ‘아이오닉5’
그런데, 정작 현대차를 머스크 입에 올리게 만든 것은 제네시스가 아니었다. 2018년 촌스러운 모습으로 그를 도발했던 아이오닉이었다.
현대차는 친환경 전용 모델이었던 아이오닉 브랜드를 순수 전기차로 개발해 ‘아이오닉5’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2월 처음 공개했는데, 돌풍을 일으켰다. 출시 전, 계약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상을 휩쓸며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아이오닉5가 확 달라진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차가 이와 함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아이오닉5는 현대차가 만든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장착했다.
2000년대 이후 자동차 완성차 업체들은 차체에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처럼 부품을 조합해 차량을 만드는 플랫폼 기반의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차량 모델은 다르지만, 처음 만들 때 기본 틀은 같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 대형 회사일수록 유리하다. 재료비나 생산비, 개발기간 모두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나 폭스바겐 모두 이 전략을 쓰고 있다.
현대차는 2019년 3세대 플랫폼을 도입해 원가를 절감했다. 6개 플랫폼으로 생산하던 것을 3개 정도로 줄였다. 세단이나 SUV 구분 없이, 대형 중형 소형으로 통일했다. 제네시스 등 별도의 방식을 택하는 모델도 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전혀 다른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테슬라가 이를 주도했다. 배터리와 구동모터를 핵심으로 삼는 전기차는 엔진, 변속기 등을 중심으로 설계된 내연기관차와 플랫폼이 다를 수밖에 없다.
플랫폼 바닥이 스케이트보드처럼 평평하게 생긴(이 부분에 배터리가 들어간다) 전기차는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 숫자가 기존의 절반도 안 된다. 엔진이 들어갈 공간이 필요 없다보니 전기차 보닛 안은 트렁크 공간으로 활용한다. 무게도 가벼워지고 배선도 단순해졌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생겼기 때문에 아이오닉5의 디자인도 확 바뀔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차의 첫 순수 전기차인 아이오닉5. 현대차 제공
● “이 차를 두고 테슬라를 살 이유가 없다”
아이오닉5는 사전계약 첫 날 2만 대 계약을 돌파하는 등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해외에서의 평가는 더 뜨거웠다. 아이오닉5를 시승한 미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4월 “현대차가 전기차의 진정한 다크호스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며 “한국의 성장은 도요타, 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의 부상을 되풀이한다. 이들은 50년 전 ‘헝그리 정신’으로 미국, 유럽 경쟁사보다 민첩하게 움직였다”고 했다.
NYT에 따르면 아이오닉5의 주행거리(사륜구동 옵션 기준)는 256마일(약 422㎞), 연비는 98MPGe로 테슬라 모델Y에 못 미친다. 모델Y의 주행거리와 효율은 각각 330마일, 122MPGe다. MPGe는 전기에너지를 갤런(1갤런=3.785L)당 마일(1마일=1.609㎞)로 환산한 미국식 연비주행 표시다.
반면, 아이오닉5는 충전 속도에서 강점을 보인다. 아이오닉5의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8분 정도다. 아이오닉5는 800V(볼트) 충전 시스템을 갖췄는데 이는 테슬라의 2배다. NYT는 “아이오닉5를 5분 충전하면 최대 109㎞를 더 달릴 수 있다”며 “아이오닉5의 초고속 공공 충전은 가장 큰 기술적 성취”라고 했다.
미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지난해 말 “아이오닉5는 (테슬라) 모델Y보다 수만 달러 저렴하고, 충전 시 멀리 갈 수 있고, 더 빨리 충전되고, 더 나은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다”며 극찬했다. “테슬라 배지와 충전 네트워크를 제외하면 아이오닉5를 두고 모델Y와 모델3을 살 이유가 없다”고까지 했다.
물론, 속도는 테슬라의 차가 아이오닉5보다 더 빠르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경주에 나설 계획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이오닉5도 충분하다”고 표현했다.
아이오닉5는 유럽에서도 잘 팔렸다. 출시 3개월 만에 유럽에서 1만 대를 넘게 팔았다.
콧대 높은 독일 브랜드들마저 긴장하게 만들었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트(AMS)’는 자사가 최근 진행한 4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비교 평가에서 아이오닉5가 가장 경쟁력 있는 차로 선정됐다고 지난달 말 밝혔다. AMS는 유럽 전역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독일 3대 자동차 매거진 중 하나다. 아이오닉5와 메르세데스-벤츠 EQA 250, 아우디 Q4 e트론, 르노 메간 E-테크 등을 대상으로 바디, 안전성, 컴포트, 파워트레인, 주행거동, 환경, 경제성 등 7가지 평가 항목을 비교한 결과였다.
아이오닉5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2022 월드카 어워즈’에서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의 EQS와 아우디 e-트론 GT 등을 누르고 올해의 전기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예상 못한 결과였을 듯하다.
해외 언론들이 모든 차를 좋게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28일 “(미 자동차 브랜드) 캐딜락 리릭 SUV 전기차는 기다릴 가치가 없다”고 평했다. “경쟁사의 전기 SUV 차량이 더 먼저 나올 예정이니 기다려보자”고 했다.
독일 아우디의 e-트론 GT(왼쪽)와 메르세데스-벤츠의 EQS. 아이오닉5는 이 차들을 제치고 ‘2022 월드카 어워즈’에서 올해의 전기차로 선정됐다. 아우디·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 방황 끝난 도요타와의 본격적인 경쟁
사실, 기아 전기차 EV6의 흥행도 아이오닉5 못지않았다. 현대차만 언급하기 미안할 정도로 소리 없이 강했다.
아이오닉5는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된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미국에서 1만 대가 팔렸다. EV6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유럽에서 2만1852대가 팔렸다. 아이오닉5와 EV6가 두 대륙에서만 3만 대가 넘게 팔렸다.
EV6는 영국 자동차 전문 매체인 왓카가 주최하는 ‘2022 왓카 어워즈’에서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8년 시작된 이 상은 유럽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 현대차가 선보인 두 번째 전용 전기차이자 첫 세단형 전기차인 ‘아이오닉6’에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유선형 디자인이 특징이다. 영국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는 “유선형 디자인은 미적으로 훌륭하지만, 제작이 어렵다”며 “아이오닉6의 디자인은 유선형을 잘 유지하면서 뛰어난 공기저항 계수까지 자랑한다”고 평했다.
현대차는 일본에서 아이오닉5, 넥쏘 등을 온라인으로 지난달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국민들이 자국차를 선호해 ‘수입차의 무덤’으로 꼽혀온 곳이다. 그런데, 전기차에서는 유독 수입차 비중이 높은 편이다. 닛산이 1만 여대를 팔며 점유율 50%를 넘겼지만, 도요타(758대)와 혼다(723대)는 저조했다. 나머지 40% 가량인 8605대는 수입차였다.
일본의 전기차 인식이 아직 떨어져 있고, 도요타 등 완성차 브랜드들이 뒤늦게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 도요타는 첫 전기차 bZ4X를 올해 4월에서야 일본과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렉서스의 첫 전기차 UX 300e 역시 최근에 나왔다.
전기차 진출이 늦어지긴 했지만, 도요타의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도요타는 세계 신차 판매 시장에서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미 자동차 시장에서 최초로 GM을 제치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약 857만 대 생산량 중 233만2000대가 미국에서 팔렸다. GM의 미국 판매량은 221만8000대였다. 현대차는 전년 대비 19% 늘었지만 73만8081대로 격차를 보였다. 도요타는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시장에선 압도적인 성적을 보이고 있다.
도요타 첫 전기차 bZ4X. 도요타자동차 제공
● 현대차는 빠르게 달리는 ‘후발주자’
전기차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도요타가 지난해 9월 전기차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의 개발과 생산에 1조5000억 엔(약 16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도요타 측은 “2030년까지 연간 200GWh(기가와트시) 이상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했다. 도요타가 연 200GWh의 배터리 생산규모를 갖추면 연 300만~40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전기차 대량보급을 체계를 갖추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배터리 생산의 내재화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도요타의 전략이다.
일각에서는 도요타의 전기차 진출이 늦어진 것이 배터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에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메이저 배터리 제조사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지만, 일본에는 파나소닉이 이를 주로 생산하다보니 계약 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해외에 맡기려니 정치적 이슈나 공급망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자국의 업체와 계약하면 가격 결정권이 흔들리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도요타도 이러한 점을 종합해 막대한 투자를 해서라도 배터리 생산능력을 직접 갖추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최근 공개한 ‘N비전74’ 콘셉트카. 이 고성능 모델은 현대차가 1974년 첫 스포츠카로 선보이고자 프로토타입까지 개발했지만, 경제위기 등으로 출시하지 못한 ‘포니쿠페’ 디자인을 참고해 만들었다. 현대차 제공
● 차만 만들까, 차도 만들까…
최근 관심을 받고 있지만 현대차 역시 전기차 시장에서는 ‘후발주자’다. 테슬라는 2012년 대형 전기차 세단인 모델S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했다. 현대차보다 8년 이상 빠른 셈이다. 현대차가 열심히 테슬라에 따라 붙으려는 상황에서 내연기관 강자였던 도요타의 전기차 올인 전략은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전기차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도요타의 경쟁을 고려했을 때) 저렴하게 만들어야 하는 숙제까지 떠안게 됐다.
게다가 테슬라를 따라 잡으려면 자동차만 잘 만들어서는 부족하다. 자동차를 만든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할지 모른다. 테슬라가 인정받는 이유는 전기차 전용 전자 플랫폼과 소프트웨어(SW) 때문이다. 아직 결함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자율주행까지 장착하기에 한 참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계속 업데이트 시키고 있다. 테슬라는 점점 더 똑똑해질 가능성이 크다. 컴퓨터, 스마트폰처럼 말이다.
현재의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보면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내놨을 때와 유사해 보인다. 당시 전화만 잘 터지는 휴대전화를 만들었던 회사들은 현재 모두 자취를 감췄다. 전통의 완성차 업체들도 현재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폴크스바겐과 벤츠 등은 2025년 전후로 테슬라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차량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차도 2030년까지 전기차, 자율주행 등 미래 전략 사업에 95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올해 3월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10년 내에 올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첫 발을 잘 내디딘 현대차의 내일이 궁금하다.
김성모 기자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