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된 차들 사이를 지나다 보면 휠(바퀴)에 검붉은 때가 유난히 많이 낀 차들이 있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같은 독일 브랜드 차량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의 원인은 바로 브레이크 패드 분진이다.
브레이크 패드는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서 차를 멈춰 세울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모품이다. 패드가 휠에 붙어 있는 디스크 로터를 양쪽에서 꽉 붙잡으면서 발생하는 마찰로 차를 제동하는 것이다. 양산되는 차들은 모두 같은 방식의 디스크 브레이크 제동법을 쓴다. 그런데 독일 차에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지는 것은 금속 성분의 패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금속성 패드는 평상시에도 제동력이 우수할뿐더러 디스크 로터와 패드가 뜨겁게 달궈진 악조건에서도 크게 변함없는 성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조금만 주행해도 휠이 새까매질 정도로 분진을 만들어 내고 소음도 크다는 단점이 있다. 분진 때문에 휠이 새까매진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국산차는 유기질이나 세라믹 등을 소재로 하는 패드를 주로 쓴다. 충분한 제동력을 보여주면서도 분진과 소음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차이는 자동차 브랜드가 자리 잡은 국가나 지역의 특성, 주요 고객의 성향에 따라서 차량 설계의 지향점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우토반에서의 고속 주행을 염두에 둬야 하는 독일 브랜드는 급제동 상황은 물론 브레이크 과열까지 감안하면서 차를 설계해야 한다. 반면 고속 주행이 적은 한국에서는 소비자들이 외관상 깔끔하고 소음 없는 차를 선호한다. 따로 약품을 써야 씻어낼 수 있는 분진을 잔뜩 만들어 내는 패드는 자연스레 선택지에서 빠진다.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것처럼, 차량 설계가 고객의 선호에 맞춰지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안전을 유난히 강조하는 브랜드 볼보는 산길과 눈길, 얼음길이 즐비한 스웨덴에서 튼튼한 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탄생한 브랜드다. 비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이탈리아의 브랜드 피아트는 경차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뽐냈다. 역시나 좁은 길 많기로 유명한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들은 차폭과 전장을 늘리지 않으면서 공간을 최대한 확보한 박스카를 새로운 유행으로 만들어 냈다.
한국에서 차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측면과 함께 가족을 위한 편안한 이동 공간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이 때문에 거주 공간은 물론 짐칸까지도 최대한 넓은 공간을 뽑아내는 것이 국산차의 특징이다. 현대차의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 설계 과정에서는 짐칸에 골프 캐디백이 가로로 쉽게 실려야 한다는 점 때문에 작지 않은 디자인 수정이 가해진 일화도 있다.
각 브랜드마다 DNA처럼 새겨진 이런 특징은 차 산업의 전환기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현대차는 첫 전용 전기차를 내놓으면서도 전기차의 특징을 살린 넓고 자유로운 공간 활용을 주무기로 내세운 바 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