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하는 소리가 다였다. 자동차 충돌테스트 현장을 처음으로 직접 확인했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나 유로앤캡(Euro NCAP, New Car Assessment Program) 등 다양한 기관에서 공개한 이미지를 보면 차가 벽과 충돌하면서 부품 파편이 튀거나 깨지고 한바탕 요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 충돌테스트는 순식간에 절도 있게 벌어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2일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에서 전기차 아이오닉5 충돌안전평가 현장을 공개했다. 충돌 테스트 현장 공개를 통해 안전 기술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광범위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취지다.
이날 현대차그룹 측은 안전 성능을 최우선으로 수천 번의 충돌시험과 실제 사고 분석을 통해 불가피한 사고 발생 시에도 강건한 차체 구조와 최적화된 첨단 안전장치로 승객 상해를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출시 앞둔 2024년형 아이오닉5, ‘시속 64km·정면 40%’ 충돌시험 투입
충돌테스트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은 2024년형(MY 2024) 아이오닉5를 투입했다. 판매를 앞둔 연식변경 모델인데 겉으로 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화재가 많은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대표 전기차 모델을 충돌시험용으로 투입해 안전 관련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현대차그룹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2024년형 아이오닉5 충돌테스트는 시속 64km, 40% 옵셋(부분 정면) 충돌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자동차 충돌안전평가로 여겨지는 미국 IIHS 충돌 상품성 평가에 포함된 항목과 동일한 테스트 방식이다. 충돌시험 기준 역시 IIHS와 동일하게 맞춘다. 속도 기준이 시속 60km가 아닌 64km인 이유는 미국에서 자동차 속도 단위로 마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시속 64km를 마일로 환산하면 40마일이다.
시속 64km로 주행 중인 차의 전면 40%를 벽에 충돌시켜 승객 상해와 차체 변형 여부 등을 분석하는 테스트로 이해하면 된다. 2024년형 아이오닉5 승객은 인체 모형(더미) 2개가 사람을 대신한다. 성인 남성 더미를 운전석에 배치하고 운전석 뒷좌석에 성인 여성 승객 더미를 착석시켰다. 현행 IIHS 충돌시험은 운전석에만 더미를 배치하지만 향후 후석에 더미를 추가해 기준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현대차는 이번 충돌시험에 실제로 더미 2종을 배치했다. 보다 엄격해진 기준을 반영한 것이다.
○ 순식간에 벌어진 충돌… 가장 먼저 ‘도어 열림’ 확인
충돌시험장에서 직접 본 시속 64km는 체감 상 더 빠르게 느껴졌다. 벽과 전면 왼쪽 부위를 충돌한 아이오닉5는 ‘꽝’ 소리와 함께 충격 여파로 차체 뒷부분이 살짝 뜨면서 오른쪽으로 밀려났다. 충돌 당시 모습은 벽과 충돌한 아이오닉5를 기준으로 우측 후면을 대각선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충돌 직후에는 아이오닉5 보닛 부근에서 하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재로 인한 연기가 아니라 에어백이 터지면서 나온 가스다. 전면 바닥에는 작은 부품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충돌시험 완료 후에는 현대차그룹 연구원들이 나서 차량 상태를 점검했다. 가장 먼저 아이오닉5 문짝 4개가 열리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이오닉5의 모든 도어는 외부에서 손쉽게 열렸다. 승객 공간 프레임이 견고하게 유지됐고 유사 시 승객을 신속하게 차에서 빼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충돌 후 도어 개방 여부는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으로 가장 먼저 확인하는 안전 평가라고 한다. 화재 발생 시 신속하게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서는 사고 후에도 도어가 쉽게 열려야 한다는 취지다. 최근 사고가 난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안에 있던 승객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신차의 도어장치는 전자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고로 전력공급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승객이 출입하는 문짝은 외부에서 쉽게 열려야 한다.
아이오닉5 역시 평소에는 전자식으로 잠금이 이뤄지고 도어 핸들이 필요할 때만 돌출되는 방식이다. 또한 도어가 쉽게 열리기 위해서는 충돌 시에도 승객이 탑승하는 캐빈 공간(운전석·조수석·뒷좌석 등) 뼈대는 변형이 최소화돼야 한다. 그래야 도어가 외부에서도 쉽게 열릴 수 있다. 이를 위해 고장력강판이나 초고장력강판 등 충격에 강한 소재를 캐빈 공간 뼈대에 집중적으로 적용한다.
아이오닉5 충돌부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파손됐다. 왼쪽 헤드램프와 범퍼는 완전히 파괴돼 없어진 상태였고 보닛 앞부분은 충격으로 인해 엿가락처럼 휜 상태로 후드가 들려있었다. 바닥에는 오일과 워셔액으로 보이는 액체류가 흥건했다. 충돌에 의한 충격이 실내와 측면으로 전달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좌측 앞바퀴가 밀리면서 타이어가 터졌고 타이어가 밀리면서 사이드 가니쉬가 떨어져 나온 상태였다. 실내는 모든 에어백이 터진 상태였지만 스티어링 휠과 대시보드, 디스플레이 등 주요 장치들은 육안으로 보기에는 크게 파손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앞좌석과 뒷좌석에 배치된 2개의 더미는 모두 오른쪽 팔이 들려있었다.
○ 실제 사고 닮은 옵셋(부분 정면) 충돌 결과… 美 IIHS 최고등급 예고
시속 64km와 옵셋 충돌테스트는 실제 교통사고 사례 분석을 통해 고안된 시험 방식으로 알려졌다. 실제 사고 시 차의 전면 100%가 충돌하는 경우보다 일부만 충돌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이다. 옵셋 충돌시험은 테스트를 보다 실제 사고에 가깝게 재현한 방식인 셈이다. 특히 차의 앞부분 일부만 충돌하면서 물리적인 충격 흡수 관련 데이터와 튕겨져 나간 차의 상태, 앞과 뒤 뿐 아니라 좌우로도 흔들리는 승객의 안전 등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이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차체 무게중심 개선과 측면 에어백 등 새로운 안전장치 도입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충돌부위 면적이 좁을수록 가혹한 충돌시험으로 여겨진다. 현존하는 가장 가혹한 충돌테스트는 전면 25% 옵셋 충돌시험이 꼽힌다. ‘스몰오버랩’ 충돌시험이라고 불린다. 해당 테스트에 대한 평가는 미국 IIHS에서만 이뤄진다. IIHS가 세상에서 가장 가혹하고 점수를 획득하기 어려운 자동차 안전도평가로 여겨지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진행된 충돌시험 분석 결과 IIHS 기준 최우수등급(G, Good)을 획득했다고 전해왔다. 운전석과 측면, 커튼 등 더미가 착석된 좌석의 에어백이 모두 정상적으로 전개됐고 시트벨트 프리텐셔너와 로드리미터도 정상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도어 문열림과 시트도 이상이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충돌 속도와 충돌 타격 위치도 오차범위 이내로 문제가 없었고 배터리 파손으로 인한 전해액 누유나 화재, 연기 등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IIHS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차체 변형은 G등급이 나왔고 더미(2개) 상해 수준 역시 전 영역이 G등급을 받아 글로벌 최고 수준 전기차 안전성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 ‘억’ 소리 나는 인체 모형 ‘더미’… 현대차그룹, 다양한 체구 170세트 보유
자동차 안전도평가에서 빠질 수 없는 인체 모형 ‘더미’ 역시 충돌시험 기준이 변하면서 진화를 거쳤다. 충돌테스트 장소인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에 들어서면 수많은 더미들이 한데 모여 있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 충돌시험용 더미는 지난 1971년 제너럴모터스(GM)이 처음 개발했다. 1997년 개발된 더미가 성능 개선을 거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더미는 성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 등을 비롯해 충돌 방식에 따른 제품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가격은 1개 세트(더미, 센서, 부속품 등 포함)가 1억~3억 원 수준이라고 한다. 정면충돌용 더미 표준형에는 센서 52개가 부착된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더미는 27종, 170세트 규모다. 사용한 더미는 자체적으로 수리해 다시 사용한다.최근에는 센서를 157개로 확대하고 인체 반응과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 정면충돌용 더미 ‘쏘오(THOR)’와 측면충돌용 더미 ‘월드SID’ 등을 사용해 충돌 안전 평가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한다고 현대차그룹 측은 전했다. 신형 더미 쏘오의 경우 1개 세트 가격이 1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 세계 최고 수준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 매년 충돌시험 650회 진행
이번 시험이 진행된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은 지난 2005년 12월 준공된 시설이다. 세계 최고 수준 연구소로 지어졌다고 한다. 실제 차량을 활용하는 충돌시험장은 100톤의 이동식 충돌벽과 전방위 충돌이 가능한 총 3개 트랙으로 구성됐고 최고속도 시속 100km, 최대 5톤 차량까지 시험이 가능하다. 실차 충돌시험은 연간 650회가량 진행된다. 특히 안전 성능은 내수와 수출 구분 없이 동일하게 설계한다고 현대차그룹 측은 강조했다. 내수와 수출 차종 부품을 구분해 사용하면 생산과 관리 측면에서 비효율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손해라는 설명이다. 다만 생산 규모가 크지 않았던 과거(2006년 이전)에는 도금강판을 수출용 차종에만 적용하는 등 일부 부품에 대한 내수·수출 구분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국내와 다른 현지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였다고 전했다.
안전시험동에서는 신차 출시 전 개발 단계별로 정면·옵셋, 차대차, 측면 및 후방 시험 등 실제 사고를 재현한 다양한 충돌모드 테스트를 차종당 100여 차례 이상 진행한다. 충돌 시험 전에는 버추얼 충돌 시뮬레이션을 통해 차종당 평균 3000회 이상 충돌 해석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시뮬레이션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이뤄지며 보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충돌 안전 성능 개발과 검증이 가능하다고 한다. 버추얼시뮬레이션 결과 분석에는 슈퍼컴퓨터로도 1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고 현대차그룹 측은 설명했다. 1개 차종에 대한 충돌 안전 성능 개발에만 4만5000시간 넘는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버추얼시뮬레이션은 매일 100회 이상, 연간 3만 회 넘게 진행되고 실제 사고 사례 분석과 신규 안전기술 개발, 자율주행 기술 관련 안전장치 연구 등도 이뤄진다.
시간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 충돌시험을 통해 안전 성능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은 금액 환산 시 차종당 약 100억 원이 넘는다고 현대차그룹은 전했다. 이중 아직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지 않은 신차의 경우 충돌시험용 실차는 모든 부품을 맞춤·주문 제작하기 때문에 현대차 아반떼급(준중형 세단) 모델 가격이 1억5000만~2억5000만 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백창인 현대차그룹 통합안전개발실장 상무
○ 백창인 통합안전개발실장 “전 차종 안전성 최고등급(IIHS 기준) 구현 가능”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안전 성능 개선을 위한 투자와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IIHS에서 총 26개 차종이 최우수등급인 ‘톱세이프티픽플러스(TSP+, Top Safety Pick Pulus)’와 다음 우수등급인 ‘톱세이프티픽(TSP, Top Safety Pick)’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아우디와 폭스바겐 등을 거느린 폭스바겐그룹이 27종으로 가장 많지만 7개 차종이 중복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현대차그룹(기아 스포티지 1개 차종 중복)이 TSP+와 TSP 등급을 가장 많이 받은 완성차라는 설명이다. 특히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적용된 모델 3종(아이오닉5, EV6, GV60)은 모두 최고등급을 확보했다. 현대차그룹 측은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을 고려해 전용 플랫폼의 충돌 안전 성능 개발을 지속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부적으로 고전압 배터리 모듈·팩 압축 및 충격 단품 시험, 주행 중 하부 충격 시험, 실사고 통계 분석을 통한 전기차 개발 기준 적절성 검토, 충돌 화재 예방을 위한 패키지 및 설계 구조 개발, 전기차 전용 분석 시설 구축 등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백창인 현대차그룹 통합안전개발실장 상무
백창인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 통합안전개발실장 상무는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미국 IIHS 충돌시험 평가 기준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는 연구소로 상품 전략에 따른 사양 제한만 없으면 모든 차종을 IIHS 기준 최고등급(TSP+)을 획득하도록 만들 수 있다”며 “실제로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에서 나온 평가 결과가 IIHS에서도 동일하게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 최우선 철학을 기반으로 최상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보다 높은 안전 성능 개발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