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플레이션’(카+인플레이션)으로 자동차 가격이 고공 행진을 벌이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향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소형 SUV를 연이어 내놓으며 젊은 고객을 잡기 위한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 2000만 원대 초반 트랙스의 ‘선전’
1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지엠(GM)이 내놓은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5월 한 달 동안 3396대가 팔렸다. 소형 SUV 부문에서 기아 셀토스(4792대)에 이은 2위 실적이다. 올해 1월 완전 변경 모델로 돌아온 현대자동차 코나(2522대), 2월 연식 변경을 단행한 기아 니로(2452대)를 뛰어넘은 성적표다.소비자들이 세단보다 SUV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소형 SUV는 사실상 완성차 브랜드의 엔트리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소형차는 사회 초년생 등 젊은 세대가 첫 차로 고려하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이 판매량에 큰 영향을 주는 차급이다. 다만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가격 상승 압박은 소형 SUV 시장도 피해 가지 못했다. 2500만 원대 중반부터 시작하는 현대차 코나는 통풍 시트 등 인기 선택 사양을 적용하면 3000만 원을 넘나든다. 기아 니로는 내연기관 없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로만 판매돼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높다.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높은 판매량은 2052만 원부터 시작하는 저렴한 가격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차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가성비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이 차량은 예상을 뛰어넘는 주문이 몰리며 지금 계약할 경우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관계자는 “현재 생산 능력 때문에 국내에서 월 4000대 이상 판매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물량을 더 댈 수 없어 아쉬울 만큼 소비자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 소형 SUV 가격 경쟁 더 치열해질 듯
자동차 업계에서는 소형 SUV의 가격이 2000만 원대 초반을 유지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소형 SUV의 강자로 꼽히는 기아 셀토스의 판매 가격도 2000만 원대 초반부터 시작되도록 책정돼 있어 높은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차량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감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자동차 판매 시 부과하는 개별소비세를 다음 달부터 3.5%에서 5%로 환원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가격 인상이 예고돼 있어서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가처분소득 감소와 경기 침체 우려 등도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완성차 브랜드 입장에서 소형 SUV는 상위 차종을 구입할 잠재적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모델이다.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소형차를 여전히 개발하고 판매하는 이유다. KG모빌리티(옛 쌍용차)가 소형 SUV인 티볼리의 부분 변경 모델을 선보이며 시작 가격을 1883만 원으로 책정한 것도 충성 고객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국내 시장에서 판매 부진을 겪은 한국GM, KG모빌리티 등이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주도할 것”이라며 “소형 세단 수요까지 흡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소형 SUV의 ‘가성비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