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메르세데스벤츠 연구개발(R&D) 센터가 위치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본보 신아형 기자가 벤츠사의 자율주행 레벨3 상업용 차량을 체험하고 있다. 국내 언론 중 벤츠사의 레벨3 차량을 시승한 건 처음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이제 눈을 감아보겠습니다.”
5일 오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8번 고속도로(아우토반). 메르세데스벤츠(벤츠)의 ‘레벨3’ 자율주행차 운전석에 탄 마티아스 카이저 시니어 엔지니어가 조수석에 앉아 있던 기자에게 말했다. 운전 중 핸들을 잡지 않아도 되는 레벨3 차량이긴 했지만 시속 60km로 달리는 도중 눈을 감는다니…. ‘진짜 그래도 될까?’ 불안감이 앞섰다.
운전자가 눈을 감고 1초가량 지나자 짧은 경고음이 울렸다. 한 차례 경고에도 운전자가 눈을 뜨지 않자 다시 좀 더 긴 경고음이 울렸다. 이어 ‘지금 당장 운전을 하라!’는 빨간색 글씨와 함께 핸들을 잡은 두 팔 이미지가 계기판 화면에 떴다.
청각 및 시각 경고에도 운전자가 반응하지 않자 이번에는 운전석 안전벨트가 조여지며 빠르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은 약 10초 동안 이어졌다. 그사이 운전자를 깨우기 위한 짧은 브레이크가 작동됐다. 긴급 상황임을 알리는 비상등도 켜졌다.
15초 동안의 경고가 끝나고 자율주행 모드가 강제 종료된 후에야 운전자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 카이저 시니어 엔지니어는 “계속 핸들을 잡지 않으면 서서히 속도가 줄면서 차가 멈춘다. 이어 응급구조가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해 구급대에 연락이 취해진다”고 했다.
비상 상황을 제외하고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되는 레벨3 차량의 모니터 화면. 스도쿠 퍼즐 등 게임들과 인터넷 브라우저 등 각종 즐길거리가 설치돼 있다. 슈투트가르트=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 놀거리 가득한 레벨3 자율주행차
본보 기자는 국내 언론 최초로 독일 아우토반에서 벤츠사의 레벨3 자율주행차를 체험했다. 레벨3는 평상시 전방을 주시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자율주행차다. 운전자가 항상 핸들을 잡고 있어야 하는 레벨2보다 진일보한 기술이다. 다만 레벨3도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운전자가 즉시 핸들을 잡아야 한다. 잠을 자거나 뒤돌아 있어도 안 된다.
기자가 탑승한 레벨3 EQS 앞좌석 터치스크린 화면은 기존 차량의 두 배 가까이나 됐다. 자율주행 중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지루함을 달래라는 취지다. 화면에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돼 있었다. 퍼즐, 다른 그림 찾기 등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검색, TV 시청도 가능했다. 앱스토어도 있어 원하는 앱을 내려받을 수도 있었다.
벤츠는 세계 최초로 2021년 레벨3에 대한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의 ‘자율주행 기술 승인 규정’을 충족했다. 이후 독일 당국으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아 지난해 레벨3 양산차를 출시했다. 벤츠는 올 1, 6월 각각 미국 네바다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레벨3 판매 허가를 받아 미국에서 레벨3 양산차를 판매하는 첫 자동차 회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각국 정부에서 레벨3 공식 인증을 받고 양산차를 판매하는 자동차회사는 벤츠와 일본 혼다뿐이다. 알렉산드로스 미트로풀로스 벤츠 대변인은 “정확한 판매 규모는 회사 규정상 밝힐 수 없다”면서도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레벨3 차량을 사려 한다. 행복할 정도로 예약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 도입되는 기술인 만큼 독일 정부와 각 제조사는 철저한 운전자 안전 교육을 시행 중이다. 독일 곳곳에선 레벨3 차량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교육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벤츠 관계자는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모임은 주기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라며 “각 벤츠 지점 영업 직원 대상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최대 시속 60km 극복이 과제
자율주행차 업계의 숙제는 안전 수준과 함께 주행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현재 벤츠의 레벨3 자율주행차는 시속 60km까지만 달릴 수 있다. 이를 두고 제한 속도가 없는 독일 고속도로에서 시속 60km로 주행하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벤츠는 레벨3 주행 속도를 내년까지 시속 90km, 2030년에는 시속 130km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레벨3 주행 최고 속도를 시속 60km로 제한했던 UNECE도 지난해 5월 시속 130km로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현대차 역시 올해 레벨3 시스템을 탑재한 G90을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추가 기술 보완을 통해 주행 속도를 높이겠다며 출시를 내년으로 연기했다.
카이저 시니어 엔지니어는 “빠른 자율주행을 위해선 센서들이 더 짧은 시간에 주변 교통 환경을 정확히 감지해야 하기에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제조사 간 기술경쟁이 자율주행의 미래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10년 뒤 교통사고 사망자가 없어지는 ‘비전 제로’ 목표를 달성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에 대한 우려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올해도 세계 곳곳에서 자율주행차 사고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 소지도 여전히 불분명하다. 미트로풀로스 벤츠 대변인은 ‘완전 자율주행에 가까워질수록 제조사의 책임도 커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제조사로서 느껴야 할 책임과 법적 책임은 구분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또 “레벨3에도 비상 상황에는 운전자가 개입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자의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고 건별로 꼼꼼히 원인을 조사해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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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