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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기술 인재, 차별화된 ‘전문가 트랙’으로 경력 개발

배미정 기자
입력 2023-10-23 03:00:00업데이트 2023-10-23 03:00:00
경기 화성시에 자리 잡은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 전경.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연구개발(R&D) 연구소로 현대차 내 기술 전문 인력들이 이곳에서 주로 근무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경기 화성시에 자리 잡은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 전경.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연구개발(R&D) 연구소로 현대차 내 기술 전문 인력들이 이곳에서 주로 근무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전 세계적으로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핵심 인재에 대한 지원 폭을 넓히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연구개발(R&D) 직군을 대상으로 ‘펠로’ 등을 선발해 임원급의 금전적 보상과 더불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보통 이런 혜택은 극소수의 인재들만 누릴 수 있으며 조직 전체로 확산되지는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술 인재를 위한 체계적인 경력 개발 경로인 연구전문가 제도를 만들고 지속해서 발전시켜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6년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만 해도 연구전문가라는 낯선 경력 경로에 대해 구성원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6년에 걸쳐 사내 의견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한 결과, 오늘날 글로벌R&D전문가-글로벌R&D마스터-연구위원-수석연구위원의 4단계로 이어지는 연구전문가 경력 경로를 완성했다. 2023년 9월 기준으로 총 135명의 연구전문가가 활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430여 명의 핵심 인재가 제도의 혜택을 받으면서 현대차의 기술 리더로 성장했다.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는 핵심 인재들이 관리자가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적성과 전문성을 발휘해 기업 가치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력 개발 경로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10월 1호(378호)에 실린 현대차 연구전문가 제도의 발전 과정을 요약해 소개한다.

● 연구위원을 위한 리서치랩 도입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는 기술력이 탁월한 인재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일반 보직 경로와 별도로 연구 전문가 경로를 제도화해 운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는 기술력이 탁월한 인재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일반 보직 경로와 별도로 연구 전문가 경로를 제도화해 운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2006년 연구전문가 제도를 도입한 초기에는 현대차 내에 글로벌R&D전문가와 연구위원밖에 없었다. 당시 글로벌 수준의 선도적 기술을 개발하려면 단기적으로 양산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장기적인 기술 R&D에 전념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글로벌R&D전문가는 책임연구원 6년 차 이상을 대상으로 선발하고, 연구위원은 기존 임원 중에서 기술력은 탁월하지만 상위 직책으로 가기엔 조직 관리 역량이 부족한 인사를 주로 발탁했다.

초기에는 연구위원에게 개인 연구실, 연구비 외에 별도의 조직을 지원해주지는 않았다. 이에 연구위원은 현업 부서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했다. 그런데 연구위원이 현업 부서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겼다. 예컨대 연구위원은 원천 기술 개발에 관심이 컸지만 현업 부서는 연구위원에게 당장 양산 차량의 문제를 풀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요구했다.

이에 인사운영팀은 연구위원의 역할을 ‘개발 기간이 10년 넘게 걸릴 원천 기술보다 회사의 중장기 전략과 연계된 선행 기술을 연구하는 직책’으로 구체적으로 정의했다. 또 연구위원이 혼자서 과제를 수행할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해 2012년 연구위원이 이끄는 연구 조직으로 ‘리서치랩’을 도입했다. 리서치랩이 도입되면서 연구위원들의 만족도와 성과가 높아졌으며 연구전문가 제도에 대한 회사 내 인지도와 신뢰가 커지기 시작했다.

● R&D마스터 도입해 경력 사다리 완성
연구위원 선발 첫해에는 보직 임원 출신이 연구위원으로 전환했지만, 그 이후로는 글로벌R&D전문가 풀에서 심사를 거쳐 연구위원을 선발했다. 글로벌R&D전문가에서 연구위원이 되기까지의 기간은 최소 5년 이상으로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여정이 힘들었다. 이 기간 글로벌R&D전문가는 현업 업무를 하면서 자신의 연구 과제까지 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컸다. 또 연간 한 자릿수로 선발되는 연구위원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길고 어렵다 보니 해가 지날수록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가 떨어졌다. 이에 경력 경로를 보다 세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인사운영팀은 2014년 글로벌R&D전문가와 연구위원의 중간 단계로 ‘글로벌R&D마스터’ 직위를 도입했다. 그리고 연구위원의 선임 방식도 글로벌R&D마스터 가운데서 선발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처럼 현대차는 경력 경로를 세분하는 동시에 기술 인재들이 연구전문가로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필요한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예컨대 글로벌R&D전문가 1년 차에는 연구전문가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 교육을 제공하며 2, 3년 차에는 개인별로 R&D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도록 전문 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글로벌R&D마스터에게는 현업에서 벗어나 해외 대학, 연구기관 등에서 최대 1년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연구전문가 경로를 통해 기술 인재들은 기존 승진 체계를 통한 보직을 맡지 않더라도 본인 경력의 위치가 어디이며,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배우고 회사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됐다.

● 연구전문가 풀 확대
현대차는 2022년부터 그동안 6년 차 이상 책임연구원만 글로벌R&D전문가 지원이 가능했던 연공 요건을 폐지해 연차에 상관없이 책임연구원이면 누구나 연구전문가 경로에 도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연구전문가 경로로 들어온 이후, 예컨대 글로벌R&D전문가 육성 과정을 진행 중이거나 수료한 뒤에도 본인이 원하면 다시 보직 경로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전문가 경로와 관리자 경로 사이의 벽을 없앴다. 현대차의 연구전문가 제도는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이중 경력 경로 개발에 대한 본보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종규 미국 뉴욕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차원에서는 인재의 활용, 개인 차원에서는 동기 부여와 몰입 강화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제도”라고 평가했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