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LG에너지솔루션 제공). ⓒ News1 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해 오던 국내 배터리 업계가 숨고르기에 돌입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발맞춰 해외 생산기지 건설 속도를 조절하면서 이참에 내실 다지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배터리 업계는 완성차 기업과 협의해 합작공장 가동 시점을 늦추는 한편, 유럽 생산공장 가동률을 조정하고 있다.
◇전동화 속도조절하는 차업계…K-배터리 공장 가동도 지연
그간 고성장세를 유지하던 전기차 시장이 올해 들어 주춤하면서 완성차 기업들의 전동화 계획 수정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기존 전기차 생산계획을 폐기하고 미시간주 공장 전기 픽업트럭 생산을 1년 연기하기로 했다.
포드도 120억달러의 전기차 투자 지출을 연기, 올해 연간 60만대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내년으로 미뤘다.
폭스바겐그룹은 2026년 독일 볼프스부르크 신규 공장 설립을 백지화하고 전기차 생산 계획 축소를 공식화했다.
이같은 완성차 기업의 전동화 계획 수정은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당초 예상했던 것에 비해 일찍 둔화한 데 따른 것이다. 유럽 지역의 친환경 정책 지연과 미국의 고금리 영향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지면서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41% 증가했지만 증가율은 2021년(115%), 2022년(61%)에 비해 큰 폭으로 축소됐다.
완성차 기업의 전동화 계획 변화에 따라 국내 배터리 기업들 역시 미국 생산공장 가동 시기를 늦췄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GM과의 미국 테네시 합작공장 가동 시기를 내년으로 미뤘다. 애초 가동 목표 시점은 올해 하반기였다.
SK온도 포드와의 켄터키 합작2공장 가동 시기를 기존 2026년보다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동섭 SK온 사장은 “포드와 탄력적으로 일정 조정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유럽 공장 가동률도 조정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그룹의 전동화 계획 수정 등을 고려해 폴란드 공장 가동률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유럽 지역 전기차 수요 둔화를 언급, “가동률을 최적화해 생산량을 일부 조정하고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 및 코치와 추진 중인 튀르키예 배터리 공장 가동 시기도 미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럽 지역 전기차 수요 둔화가 두드러지는 데다 포드가 투자 계획을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 등 3사는 2026년부터 튀르키예 공장을 가동, 포드의 주력 상용차인 트랜짓(Transit)에 탑재될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너무 빨리 달렸다” 배터리 업계는 ‘안도’…기술 개발 매진
기아는 10월25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플로팅 아일랜드 컨벤션에서 기아 인증중고차 미디어 데이 ‘Movement to Trust(신뢰로 향하는 움직임)’를 개최하고, 내달 1일부터 자사 브랜드 중고차 매입 및 판매에 나선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아 인증중고차 용인센터에 EV6(오른쪽부터), 니로 EV, 레이 EV 인증중고차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 (기아 제공) 2023.10.25/뉴스1
전기차 업황 둔화가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배터리 업계에서는 오히려 사업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과 맞물려 대규모 투자가 계속되면서 사업 운영이 빠듯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업계 내에서는 “사업 확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도 나왔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국내외 공장 신·증설 속도조절을 하면서 생긴 여유를 활용해 중저가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제품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한 중국 배터리 기업의 저가 공세가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의 주요 고객사 중 하나인 BMW는 자사 전기차에 LFP 배터리를 채택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저가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양산을 기존 목표인 2026년보다 앞당길 계획이다.
삼성SDI(006400)는 2026년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를 먼저 양산한 이후 전기차용 LFP를 준비할 예정이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지난 1일 ‘2023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해 “오히려 잘됐다”라며 “우리가 급히 성장하다보니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다지는 해가 되면 K-배터리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시기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동섭 SK온 사장도 “오히려 숨을 고르면서 필요한 준비를 더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