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을 이어 오던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급속한 감속 페달을 밟고 있다. 유럽 최대 전기차 시장인 독일 전기차 판매가 올해 역성장하고 있고, 중국 테슬라 상하이 공장의 출하 대수가 감소하는 등 ‘침체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주요국의 ‘보호주의’ 정책도 확대되며 한국 전기차 수출 여건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유진투자증권의 전기차산업 리포트 등에 따르면 올 1∼11월 독일 전기차 판매 대수는 62만7000대로 전년 대비 5% 감소했다. 지난달만 판매 대수는 6만3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39%나 급감했다. 연간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10% 이상 역성장이 예상된다. 독일은 유럽 전기차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에 유럽 전체로 전기차 시장 위축 여파가 커질 수 있다.
독일 전기차 시장이 위축된 데는 보조금 축소가 큰 이유로 꼽힌다. 8월 기업 구매자에 대한 보조금이 폐지됐다. 다음 달에는 4만∼6만5000유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이 사라진다. 경기 침체로 소비재 구매가 줄어든 독일의 경제 상황도 전기차 구매가 감소한 이유로 추정된다.
최근 중국의 테슬라 상하이 공장도 전기차 출하 대수가 작년보다 줄고 있다. 상하이 공장은 테슬라 연간 생산의 절반을 담당한다. 올 1∼7월 누적 출하 대수는 54만 대로 전년 대비 68%가 증가했다. 하지만 이후 성장이 정체됐고 지난달에는 18%가 감소했다. 테슬라의 신차 출시는 사이버트럭 외에는 없어 당분간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전기차 성장률은 전년 대비 29% 증가하는 데 그쳐 2021년(113%), 2022년(61.6%)과 비교해 성장세가 크게 둔화됐다.
세계 주요국들의 ‘보호주의’ 정책도 한국의 전기차 수출 여건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프랑스 정부가 15일 새로운 전기차 보조금 제도 개정안에 ‘환경점수’ 규정을 만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운송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등을 계산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운송 거리가 먼 아시아 생산 대부분 전기차들이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1일에는 IRA 세부 규정안을 발표하며 중국 지분 25% 이상 합작사의 경우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한국 배터리 업체 중에는 중국 합작사가 많은 만큼 국내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수출에도 일부 타격을 줄 수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워낙 세계 각국이 자국 산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눈치를 보며 정책을 바꿔 가고 있다”며 “시시각각 바뀌는 정책 정보를 최대한 사전에 발 빠르게 취득해 선제 대응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