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최근 국내 30대 그룹 전략·마케팅 담당 임원과 한국경영사학회 교수 70명을 대상으로 한국 기업들의 헤리티지 활용도를 설문조사했을 때 현대자동차그룹은 헤리티지를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혔다. 실제 현대차는 올해 초 ‘브랜드 헤리티지팀’을 신설했고, 울산에 헤리티지 전시관(사진)을 두고 있다.
현대차는 창업자부터 내려오는 도전의 서사를 기업 이미지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헤리티지팀은 현대차가 만든 첫 완성차인 포니의 콘셉트 차를 복원하고, 차량별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차의 ‘아이오닉5’ 전기차는 포니 디자인을 모방했고, 현대차 신형 그랜저는 1세대 ‘각 그랜저’의 디자인을 녹여내 지난해 국내 자동차 모델 중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가 헤리티지에 주목하는 것은 명차 제작사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그만한 ‘하차감’을 제공하는 데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차감이란 주로 고급차에서 내릴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과거 헤리티지를 이어 온다는 점은 완성차 제조사로서 쌓아온 수십 년간의 제작, 경영 노하우를 소비자들에게 은연중에 전달할 수 있고, 브랜드 이미지도 각인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르셰 등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헤리티지를 구축하는 전략을 활발히 펼친다. 올드카 모델의 디자인을 도입하거나 과거 차량을 복원해 전시하고, 액세서리와 같은 ‘굿즈’를 판매하는 등의 방식이다.
현대차는 높아진 위상에 걸맞은 브랜드 정체성을 새로 구축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판매량 기준 세계 3위 완성차 그룹으로 올라섰다. 그러면서 브랜드 지향점을 기존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포니를 자체 개발한 그 도전의 이미지를 전동화 전환 시기에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커진 것이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대차처럼 기업 성장의 또 다른 단계로 진입할 때 ‘리브랜딩’이 필요해진다”며 “리브랜딩은 서사가 될 수 있고 디자인이 될 수 있을 텐데, ‘나만의 헤리티지’가 주요 재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