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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제작, BMW ‘그란투리스모’ 를 타다

동아일보
입력 2010-05-31 10:17:31업데이트 2023-05-10 22:59:35
BMW가 또 하나의 문제작을 내놨다. 5시리즈의 일원으로 붙은 이름은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 이름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그랜드투어러가 연상되지만 'PAS(Progressive Activity Sedan)'라는 낯선 장르다. SAV(Sports Activity Vehicle)의 다양성에 전통적인 그랜드투어러의 특징을 함께 결합했다는 의미다. BMW가 제안하는 새로운 프리미엄 중형차의 비전과 기준, BMW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 535i를 시승했다.


▲스타일
첫 인상은 나쁘지 않다.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는 쿠페 스타일의 루프 라인이 인상적이다. X6에서도 비슷한 선형을 볼 수 있었지만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가 좀 더 세밀하게 다듬어진 느낌이다.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 우아한 인상을 줘 프리미엄 그랜드투어러의 컨셉트에 한 발짝 다가섰다. 전면부 BMW를 상징하는 키드니 그릴은 허용 범위 안에서 한껏 낮게 형성했으며, 전반적인 느낌이 5시리즈 세단과 아주 비슷하다. 칼로 자른 것처럼 보이는 그릴의 측면 모양도 여전하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디자인이다.

헤드램프는 역시 전통의 원형 헤드램프가 들어갔다. '코로나 링'이라고 불리는 원형 헤드램프를 둘러싼 고리형 장착품에는 브랜드 최초로 LED 조명을 썼다. 이 LED 조명은 때에 따라 주간 주행등으로 쓸 수도 있어 활용도가 높다. 측면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BMW 라인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허리 라인으로, 헤드램프 바깥 모서리에서 리어 램프의 윤곽선까지 이어진다. 휠베이스를 최대한 늘려 내부 공간을 확보한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리어 램프는 한눈에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임을 알게 하도록 LED를 일렬로 배치했다. 후면 디자인은 쿠페형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볼륨감 있게 제작했다. 수평선 여러 개로 안정감을 살린 모습도 엿보인다. 그러나 컴팩트함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억제된 뒷면 윈도우 크기는 자칫 시야가 좁아질 수가 있다. 이는 같은 쿠페형 디자인을 선택했던 X6에서도 지적됐던 항목이다. 각 도어의 창문은 프레임리스 윈도우를 적용했다. 역시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디자인이다.

BMW로서는 처음으로 트렁크를 두 가지 형태로 여닫을 수 있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짐의 크기에 따라 열고 닫는 트렁크를 선택할 수 있는 것. 뒤 창문 아래 작은 문을 열거나 다른 X모델처럼 대형 문을 여는 방식으로 구분돼 있다. 대형 문에는 자동 닫힘 기능이 있다.

좌석과 트렁크 사이에는 파티션을 달아 짐을 넣고 뺄 때 실내로 먼지나 소음을 막아준다. 기본 적재 용량은 440ℓ, 좌석을 앞쪽으로 옮기고 파티션을 제거하면 590ℓ까지 늘어난다. 폴딩 방식인 뒷좌석을 접으면 1,700ℓ까지 트렁크 공간이 늘어난다.


실내를 들여다보면 이 차의 성격이 장거리 여행에 맞춰져 있음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개인 공간이 7시리즈와 맞먹을 만큼 매우 넓기 때문이다. 직접 앉아 보면 확실하게 몸이 편안함을 느낀다. 장거리 운행 때면 막연하게 '좁은 차 안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있게 마련인데, 이런 스트레스가 없다.

BMW가 발표하기로는 비행기 1등석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 휠베이스를 최대한 확보한 덕분이다. 그랜드투어러에 걸맞는 여유로운 공간구성이다.

앞 쪽으로 시선을 이동시켜 보자. 운전석 계기판은 수평으로 디자인했다. 여유로운 인상을 강화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거의 동의하지만 워낙 안으로 들어간 디자인에 익숙한 터라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주행 시야에 표시해주는 헤드업디스플레이 덕분에 BMW의 계기판은 운전 중에는 거의 볼 일이 없다.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센터페시아는 패널 곳곳에 고광택 우드를 써서 고급감을 살렸다. 격에 맞는 내장재다.

10.2인치 디스플레이 모니터에는 한국 전용 내비게이션이 나타난다. 이 지도는 매우 만족스럽다. 완성형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경쟁 브랜드에 견줘도 훌륭하다. 후방 주차 때 차 주변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이드뷰와 탑뷰 영상도 함께 표시된다. 아울러 전방 상황도 PDC 카메라를 통해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멀티미디어 시스템과 차의 각 기능을 조절하는 i드라이브의 컨트롤 조그는 5시리즈 세단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조금 기울어졌다. 조작할 때 가장 자연스런 팔의 각도를 형성해 편안하게 다룰 수 있다. 옆으로는 기어 레버가 있고, 컵 홀더 두 개와 프라이버시를 강조해 열쇠로 잠글 수 있는 여닫이 암레스트가 이어진다.

▲성능
공식명칭은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 차체에는 535i GT라는 코드네임이 붙어있다. 파워트레인에는 5시리즈 세단 라인의 535i와 같은 엔진과 변속기를 쓴다. 직렬 6기통 3.0ℓ 엔진이 올라갔다. 가속 페달을 밟아보면 반응이 조금 더디다. 같은 파워트레인이 올라간 535i 세단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랜드투어러라는 제품 컨셉트를 웬만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재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보다 여유로운 가속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회사에서도 그런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고속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안정된 주행을 할 수 있다. 변속기는 7시리즈에 이어 자동, 수동 모두 8단을 지원하는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는 세 가지 주행 모드를 지원한다. 세단처럼 편안한 주행을 위한 컴포트 모드, 가장 평균적인 달리기를 하는 노멀 모드, 역동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스포츠 모드, 운전자의 드라이빙 스킬을 뽐낼 수 있는 스포츠+모드다. 모드 변경은 기어 레버 옆쪽의 조작 스위치로 한다. 아래로 내리거나 위로 올리면 디스플레이 모니터와 계기판에 현재의 모드를 표시한다.

컴포트 모드는 말 그대로 승차감 중심의 주행 모드다. 노면 충격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과속 방지턱을 넘는 느낌도 매우 부드럽다. 충격을 하부에서 잘 흡수한다. 일본차 같은 '물렁함'은 없지만 장거리 여행 때 운전자나 동승자에게 큰 불편이 없도록 세팅했다. 그란투리스모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모드이기도 하다. 노멀 모드도 특별한 점은 없지만 컴포트 모드 특유의 부드러움이 싫다면 추천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할 주행 모드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모드로 넘어가면 차의 가속력은 풍부해지고 서스펜션도 매우 딱딱하게 변화하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 무거운 스티어링 휠도 달리기 성능만큼 묵직해진다. 동력이 오르는 만큼 뒷바퀴에서 앞쪽으로 밀어내는 힘도 놀랍다. 다만 성능에 중점을 둔 탓인지 연비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스포츠+ 모드는 일반적인 스포츠 모드에서 차체를 안전하게 제어하는 EPS를 꺼버린 상태다. 이는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돌리면 계기판에 표시되는 내용으로 알 수 있다. 운전자가 차를 몰 때 전자기기들의 통제를 받지 않고 운전 자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언더 스티어링, 오버 스티어링를 가리지 않는 오로지 운전자 제어에 따라 움직이는 '적나라한 달리기'다.

그랜드투어러답게 크루즈 컨트롤도 들어갔다. 원하는 속도를 맞춰놓으면 속도를 유지한다. 고속도로에서 매우 쓸만하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앞차와 거리를 계산해 자동 가속, 제동을 하는 기능을 포함했다는 점이다.

세 단계로 간격을 조절할 수 있는데, 앞차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알아서 제동하고 떨어지면 가속한다. 운전자가 따로 페달을 조작할 필요가 없다. 역시 고속도로에서 활용할 수 있다. 지체와 정체가 반복되는 시내 도로에서는 쓰기 어렵다. 물론, 일반 도로라고 해도 속도를 내는 상황이라면 쓸 수 있다. 그만큼 센서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이 기능은 스티어링 휠 좌측의 버튼으로 켜고 끌 수 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자동으로 꺼진다.

제동력도 만족스럽다. 한마디로 종합해서 말하자면 잘 달리고 잘 선다. 연료효율은 EU기준으로 8.9ℓ/km다. CO₂배출량은 209g/km로 동급에서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총평
5시리즈의 새로운 형제가 된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는 X6를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BMW로서는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차를 처음 본 사람들도 거의 모두 비슷한 반응이다. BMW의 한 관계자도 '뭐 이런 차가 다 있나'라는 생각을 했을 만큼 BMW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한 차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직접 타보고 운전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달리는 즐거움과 함께 그랜드투어러에 최적화된 실내 공간, 프리미엄 브랜드다운 내부 소재가 생각을 바꾸게 한다. 그러나 외관 디자인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대목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든 차에 따라다니는 주홍글씨와도 같다.

BMW에 따르면 국내에는 선택품목을 최대한 갖춘 트림과 몇몇 품목을 뺀 트림으로 나눠 출시할 예정이다. 최상위 모델은 가격이 1억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측한다. 그보다 한 단계 낮은 트림은 5시리즈 세단의 528보다 조금 비싸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목표로 여전히 조율 중이다. 그러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든 이 매력적인 차를 손수 운전해 보는 일은 매우 즐거울 것이다.

시승/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사진/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