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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차 타고 달리는 K-소프트웨어… 글로벌 표준 가시화

정진수 기자
입력 2026-06-04 18:08:27 업데이트 2026-06-04 18:30:13
SVNet 구현 장면. 스트라드비젼 제공SVNet 구현 장면. 스트라드비젼 제공
애석하지만 한국은 자동차 산업 역사에서 한 번도 세계 최고에 오른 적이 없다.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글로벌 시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주도해 왔다.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한 선진 자동차 기업들이 산업의 표준을 만들었다. 독일은 기술력으로, 일본은 품질과 효율성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짧은 시간 놀라운 성장을 이뤘지만 시장의 규칙을 만들거나 산업 패권을 주도한 경험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자동차 산업의 권력 지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세기 넘게 자동차 경쟁력은 정교한 엔진과 효율적인 생산체계에서 나왔다. 더 빠르거나 더욱 효율적인 차를 만들 수 있는지가 승부를 갈랐다. 그러나 전기차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기술이 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게임의 규칙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자동차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니다. 바퀴 달린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자동차 제조사 간 경쟁이 시장을 움직였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승부를 가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 기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고급차의 전유물이었다. 고성능 반도체와 고가 센서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같은 하드웨어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느냐에 따라 성능 차이가 발생한다. 비싼 부품보다 똑똑한 코드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축이 ‘철판’에서 ‘코드’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잡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AI 비전 소프트웨어 기업 스트라드비젼이다.

스트라드비젼은 ADAS용 객체 인식 솔루션 ‘SVNet’을 2019년 상용화한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차량 카메라로 수집한 영상을 AI가 실시간 분석해 보행자와 차량, 차선, 신호등, 표지판 등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현재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스트라드비젼 기술을 채택해 전 세계 도로를 달리고 있다. 약 500만 대 가까운 차량에 비전 AI 솔루션이 탑재되면서 사실상 글로벌 표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인도가 내년부터 상용차 ADAS 장착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관련 시장 확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스트라드비젼의 강점은 특정 반도체에 종속되지 않는 범용성에 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다양한 하드웨어 환경에서도 동일한 성능을 구현할 수 있어 개발 효율성과 비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기존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기술이 고급차에 먼저 적용된 뒤 수년이 지나 대중차로 확산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한 번 개발된 기술은 가격대와 차급을 넘어 빠르게 확산된다. 최고급 차량에 적용된 안전 기능이 경차에도 동일하게 구현될 수 있다.

AI는 자동차 기술의 상향 평준화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산업 구조 변화와도 연결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더 이상 특정 부품 경쟁력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출고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기능을 개선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이른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이 미래차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스마트폰 산업이 걸어온 길과도 닮아 있다. 과거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하드웨어 성능이 경쟁력이었지만, 지금은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생태계가 시장을 좌우한다. 자동차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래 자동차 시장의 승자는 가장 좋은 차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보유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와 AI,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결합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남이 만든 규칙 안에서 경쟁했다면 앞으로는 한국이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위치에 설 수도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과거 자동차 산업이 얼마나 튼튼하게 차를 만드는가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얼마나 똑똑하게 차를 구동하는가의 싸움”이라며 “제조업의 강점과 소프트웨어의 유연성을 결합한 K-소프트웨어가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의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