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까운 것의 소중함은 오히려 잊기 쉽다는 말이 있다. 지난 1일 오랜만에 창덕궁을 찾으며 그 말을 떠올렸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문화유산이지만, 정작 한동안 그 가치를 잊고 살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의 도심 풍경을 뒤로하고 궁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은 잠시 멈췄다. 은은한 빛을 머금은 바닥과 세월의 흔적이 쌓인 건축물, 고즈넉하게 이어지는 공간은 궁궐 특유의 기품과 어우러져 묘한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이날 창경궁 낙선제에서는 ‘K-헤리티지 아트展, 이음의 선(線)’ 개막전이 열렸다. 가장 한국적인 공간에서 국가무형유산 장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포르쉐’까지 등장하며 흥미를 돋았다.
전시 주제는 ‘몽로(夢路)-꿈의 길에 서다(Driven by Dreams)’다. 장인들이 걸어온 여정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고 현대 작가들의 시선을 더해 과거와 현재, 전통과 미래를 잇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전시에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이수자, 현대 작가 등 총 48명이 참여해 전통공예와 회화,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160여 점을 선보였다.
낙선재와 석복헌, 수강재로 이어지는 전시 동선도 인상적이다. 메인 공간인 낙선재에서는 금박·소목·칠·자수 등 전통 재료와 기법을 계승해 온 국가무형유산과 장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석복헌에서는 전통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고, 수강재에서는 국내외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장 사이를 걷다 보면 오래된 한옥의 기품과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궁궐이라는 공간 자체가 전시의 일부가 된 듯했다. 전통 장인의 손길이 담긴 작품 옆에는 현대적인 설치와 회화가 놓였고, 서로 다른 시대의 감각은 생각보다 이질적이지 않았다.

특히 현장에서는 포르쉐코리아와 국가무형유산 장인들이 함께 만든 협업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낙선재와 석복헌 사이에는 국가무형유산 칠장 정수화와 금박장 김기호가 포르쉐코리아와 협업해 제작한 특별 작품이 전시됐다.
먼저 정수화 칠장의 작품은 전통 옻칠과 자개를 활용한 조패 기법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포르쉐 크레스트와 전통적인 목단 문양을 접목해 한국 전통공예와 포르쉐가 강조하는 기술과 혁신이라는 가치를 한 작품 안에 담아냈다.
작품을 완성한 정순화 작가는 “여러방향으로 뻗은 선은 포르쉐가 전 세계로 더욱 뻗어나가라는 의미”라며 “제작 기간만 꼬박 3개월이 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김기호 금박장의 ‘포르쉐 금빛 길상 [고려불화 별문]’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가로 127.5㎝, 세로 81㎝ 크기의 작품이다. 라(羅) 직물과 비단 위에 순금박을 활용해 제작했다.
작품 바탕에는 고려불화에서 볼 수 있는 별 문양이 깔렸다. 그 위에 포르쉐 크레스트와 우주를 향해 펼쳐지는 방사형 만다라를 금빛으로 새겼다. 고려불화의 전통적인 조형미와 현대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상징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특히 반투명한 라 직물이 만들어내는 질감이 인상적이다. 왕실 혼례의 면사포와 고려불화 속 보살의 옷에서 이어지는 전통적인 미감을 바탕으로 금빛의 길상적 상징을 더했다. 별과 우주를 품은 만다라는 중심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며 무한한 가능성과 성장, 번영을 기원한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전통기법과 글로벌 브랜드의 상징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모습은 이번 전시가 내세운 ‘이음’의 의미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마티아스 부세 포르쉐코리아 대표는 “한국 전통문화와 국가유산이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돼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매우 의미가 깊다”며 “한국의 문화유산이 다음 세대와 세계에 새로운 영감과 꿈을 전하는 살아있는 헤리티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포르쉐가 강조하는 ‘살아있는 헤리티지’
이번 전시는 포르쉐코리아가 2022년부터 진행해 온 사회공헌 프로그램 ‘포르쉐 퓨처 헤리티지’의 일환이다. 포르쉐 퓨처 헤리티지는 전통과 혁신을 아우르는 포르쉐 브랜드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국 고유 국가무형유산을 알리고 전승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다음 세대와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국가무형유산 이수자와 전승교육사가 함께한 문화 교육 프로젝트 ‘찾아가는 꿈의 교실’을 비롯해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국외소재 전통공예품 재현 프로젝트 ‘1899, 하인리히 왕자에게 보낸 선물’, 전승공예특별전 ‘열 번째 용의 아이와 상상동물’ 등이 대표적이다.
포르쉐코리아는 현재까지 ‘포르쉐 퓨처 헤리티지’를 통해 총 12억2100만원을 기부하며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과 전승 기반 확대를 지원해 왔다.
궁궐은 과거의 시간을 품은 공간이지만, 오늘날에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한국 문화를 만나는 현재의 공간이기도 하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궁궐의 의미를 한층 넓힌다. 전통 장인의 기술과 현대 예술, 글로벌 브랜드의 디자인이 한 공간에서 만나면서 한국의 헤리티지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궁을 찾았다가 우연히 이 전시를 만난다면 궁궐 관람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건축물 사이에서 장인의 기술을 만나고, 그것이 현대 예술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궐의 기품 속에서 마주한 금빛 포르쉐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한국적인 공간에서 만난 뜻밖의 조합이었지만, 전통과 현대를 하나로 잇는 순간, 헤리티지는 결코 과거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고 깨닫게 된다. .
전시는 오는 6일까지 진행된다. 창덕궁 입장객은 별도 전시 관람료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는 현장 신청을 통해 전시 해설 프로그램에도 참여 가능하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커리어우먼의 차’ GV70, 예쁜 생김새와 맞바꾼 연비는 ‘못 본 척’[최원영의 Car리나]](https://dimg.donga.com/a/94/65/90/1/wps/EVLOUNGE/IMAGE/2026/09/02/134578291.2.jpeg)
![도요타 하이브리드 가치↑ 6세대 ‘라브4’ 韓 공략[명차 꺼내기]](https://dimg.donga.com/a/94/65/90/1/wps/EVLOUNGE/IMAGE/2026/09/01/134586240.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