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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러스트벨트에 韓미래차 연구소… 반도체도 한미 시너지

플리머스=임우선 특파원 , 홍석호 기자
입력 2025-01-10 03:00:00업데이트 2025-01-10 19:48:22
“북미 시장은 경쟁이 심하고 기술 변화도 빨라 차별화된 기술과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박인욱 현대모비스 북미연구소장)

지난해 12월 16일 미국 미시간주 플리머스의 현대모비스 북미연구소를 찾았다. 미시간주는 북미 상위 100대 자동차 관련 기업 중 96곳이 본사 및 거점 시설을 두고 있는 곳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자동차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뒤부터 현지에선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도 불리지만, 여전히 ‘미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통한다.

이날 연구소에서는 미래차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 안에는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전기식 브레이크 등과 관련된 실험이 진행되는 연구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 GM 등에 기술과 제품 제공

‘자동차 기술 허브’ 미시간주의 현대모비스 연구소 지난해 12월 16일(현지 시간) 미국 미시간주 플리머스의 현대모비스 북미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운전자의 음주 운전 패턴을 분석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모습. 미시간주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연구소가 밀집해 있어 자동차 기술의 허브로 불린다. 플리머스=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자동차 기술 허브’ 미시간주의 현대모비스 연구소 지난해 12월 16일(현지 시간) 미국 미시간주 플리머스의 현대모비스 북미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운전자의 음주 운전 패턴을 분석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모습. 미시간주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연구소가 밀집해 있어 자동차 기술의 허브로 불린다. 플리머스=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현대모비스는 2004년 현대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 처음 진출했다. 2008년 자체 R&D 조직을 설립했고 2014년 별도 연구소를 세웠다. 그 후 기술력을 인정받아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리비안 등 미국 자동차 기업에도 기술과 제품을 제공했다. 설립 초기 40여 명이었던 연구소 인력도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현지에서 이 연구소는 한국 자동차 기술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여겨진다. 1986년 현대차가 ‘포니 엑셀’을 수출하며 한국 자동차의 미국 시장 진출이 시작됐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 자동차의 이미지는 ‘성능이 떨어지는 값싼 차’였기 때문이다. 이랬던 한국 자동차가 미국에 연구소를 세워 현지 자동차 기업과 협력하고, 미래차 기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현지 자동차 업계에서의 위상 역시 올라가고 있다. 미시간주 경제개발공사(MEDC)의 레이철 도널드슨 글로벌 비즈니스 유치 총괄 이사는 “현대모비스를 포함한 미시간주의 한국 기업은 미국의 산업 발전과 첨단 기술 개발에서 없어선 안 될 핵심 파트너”라고 호평했다.

● 韓美 기업은 반도체·배터리 분야도 핵심 파트너

한국과 미국 기업은 자동차 외에 반도체, 배터리 등 다른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을 펼치며 ‘윈윈’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의 약 35%를 점유했다. 하지만 한국 대만 등에 밀리며 2020년대 들어 시장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현재 1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 첨단 고집적 반도체는 한국과 대만만 생산이 가능하다.

이에 미국은 대규모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외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 직접 생산 및 연구 시설을 짓도록 독려했다. 한국 기업은 이 ‘러브콜’에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현지 전자 기업들과의 기술 협력과 우수 인력 확보 등을 위한 취지였다.

삼성전자는 총 370억 달러(약 54조6120억 원)를 투자해 텍사스주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를 투입해 첨단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미국 정부로부터 각각 47억4500만 달러, 4억5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다.

● 韓 제조 역량과 美 연구기술 시너지

반도체 분야에서 두 나라의 협력이 긴밀히 진행되는 건 한국 기업들의 앞선 기술력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1위 삼성전자는 3nm 첨단 시스템 반도체 양산이 가능하다. SK하이닉스 역시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에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및 AI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첨단 반도체의 핵심 기술을 지닌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2000년을 전후로 일본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쇠퇴하면서 한국 기업이 안정적인 제품 공급이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미국의 파트너가 됐다”며 한국 기업이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의 양산 등에서도 선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유명 미국 완성차 기업은 전기차 개발 과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기업과 긴밀히 협력했다. 얼티엄셀스(LG에너지솔루션-GM), 블루오벌SK(포드-SK), 스타플러스에너지(삼성SDI-스텔란티스) 등 합작법인(JV)을 세워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나섰다.

이는 미국의 약점인 배터리 양산 기술과 제조 역량을 한국 기업이 보유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미국은 세계적인 명문 공대와 연구소, 풍부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 원천기술과 과학기술 인력이 풍부하다.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업계에서는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 기업 간 협력은 지속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플리머스=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