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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시장서 밀려나는 한국 車… 노사갈등-정책실종에 ‘덜컹’

김현수 기자
입력 2018-08-22 03:00:00업데이트 2023-05-09 21:45:44
올해 2월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 지리자동차가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 지분 9.69%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는 깜짝 공시가 나왔기 때문이다. 투자액만 90억 달러(약 10조800억 원)에 이른다.

독일은 ‘자동차 후진국’인 줄 알았던 중국의 부상에 뒤통수를 맞았다며 격분했다. 벤츠의 기술과 인력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세계는 중국 자동차의 야심에 주목했다. 지리자동차는 스웨덴 자동차 볼보에 이어 런던 택시회사 EV컴퍼니, 스포츠카 로터스까지 집어삼킨 터였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미국, 독일, 일본과 더불어 자동차 선진국 빅4가 되려 한다”고 평했다. 한국 자동차 업계도 놀랐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은 아직 격차가 있다지만 자본력, 정부 지원, 내수시장의 뒷받침을 감안하면 미래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중국 시장에서 밀리는 한국차

중국의 위협은 중국 시장에선 현실이 됐다. 한국차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판매량이 반 토막 난 2017년이 중국 자동차 업계에는 반등의 기회였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14년만 해도 중국 승용차 시장 상위 10대 판매 기업 중 중국 기업은 창안뿐이었다. 지난해에는 4곳으로 늘었다. 반면 베이징현대는 2014년 5위(6.2%)에서 지난해 10위(3.4%)로 추락했다. 올해도 부진은 계속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올해 상반기(1∼6월) 중국 판매량(55만2521대)은 사드 이전인 2016년 판매량(80만8359대)의 68.4% 수준이다.

사드 이전만 해도 현대차에 뒤졌던 지리자동차의 올해 중국 시장점유율은 무려 7%대로 뛰어오를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폴크스바겐, GM 다음이다. 중국차가 선전해도 도요타와 혼다는 꾸준히 중국시장 점유율 4∼5%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3%대, 1%대로 추락했다 중국차의 부상이 일본 독일 미국차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웠던 한국차에 직격탄이 된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차는 중국보다 엔진, 미션 등 핵심 기술력에서 2, 3년 앞선다. 하지만 중국차가 30% 이상 싸고, 디자인이 새롭고, 소비자 편의 기능을 현지 입맛에 맞춰 급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부진은 가뜩이나 수세에 몰린 한국 완성차와 부품사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상반기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4.6% 줄었다. 자동차 취업자 수는 7개월 연속 감소세다. 완성차의 국내 생산량 감소는 부품사 실적 악화로 이어져 사실상 차 생태계가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자동차 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생산, 고용,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생산액은 197조 원으로 전체 제조업 생산의 13.9%, 산업 종사자 수는 약 35만 명으로 제조업 종사자의 12.0%에 달한다. 수출은 657억 달러(약 73조5840억 원)로 전체 수출액의 13.3%였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 中, 시장 앞세워 미래차도 선점

중국의 ‘미래차 굴기’는 미래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이미 친환경차 시장 크기로 세계 1위다. 세계에서 지난해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판 기업은 중국 BYD였다. 2017 산업기술수준평가에서 중국과 한국의 친환경차 기술력 격차는 0.8년으로 2015년 조사(1.3년)보다 줄었다.

신에너지차(친환경차) 개발은 ‘중국제조 2025’의 10대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중국 정부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친환경차 구매보조금으로 지급한 돈만 1420억 위안(약 23조2900억 원)에 달한다. 정부가 밀어붙여 세계 최대 친환경차 시장으로 키우니 BMW그룹을 포함해 글로벌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현지 기업과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는 수소차 충전소가 8개에 불과할 정도로 친환경차 생태계가 척박하다. 정부 차원의 투자나 장기 플랜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미래차에 대비할 수 있는 기업이 현대차그룹 정도뿐이다. ‘자동차 산업 지원은 특정 기업에 대한 혜택’이란 편협한 인식이 지원 미비의 큰 요인”이라고 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미래차에 투자할 여력을 노사 갈등에 빼앗기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평균 12.29%로 일본 도요타(5.85%)의 두 배 수준이다. 반면 완성차, 부품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지출 비중은 초라하다. 부품사의 경우 1%도 안 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연기관 시절에는 패스트 팔로어 정책이 유효했지만 미래차는 완성차, 부품사,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R&D에 총력을 기울여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