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2631억 원. 정부가 내년에 전기차와 수소차 같은 친환경차 보급에 쓰려는 예산의 규모인데요.
올해 예산 2조 3193억 원보다 소폭 줄었지만, 내년도 전체 예산(677조 4000억 원)에 비춰봐도 여전히 작지 않은 수치입니다.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국회에서는 치열한 ‘예산 전쟁’이 이미 시작된 가운데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친환경차 보급 예산이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요.
전기차가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캐즘’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도 정부는 보급 대수를 더 높여 잡은 상황과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전기차 보급, 보조금 단가 낮추고 대수는 상향
규모가 큰 전기차 예산부터 보면 내년도 전기차 보급 예산은 1조 5218억 원. 올해 예산(1조 7340억 원)에 비해 2000억 원 이상이 줄었는데요.
전기차가 점차 대중화되는 만큼 정부의 보조금 예산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전기승용차 보급 목표 대수는 내년에 오히려 더 늘어났습니다. 올해 23만 3000대의 보급 목표가 내년에는 26만 대로 더 커진 것인데요.
올해는 대당 보조금이 400만 원이었지만 내년에는 300만 원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예산이 줄었음에도 보급 목표는 더 늘어난 것입니다.
● 3년 연속으로 전기차 보급 목표 못 채울 듯
문제는 최근 수년 동안 정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가 좀처럼 달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정처는 2021년 7만여 대의 보급 목표를 채운 이후 2022, 2023년에는 모두 보급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요.
올해도 10월까지의 목표 달성률이 44.4%(8월 기준은 34.8%)에 그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전기차 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매년 보조금은 줄어들고 ‘얼리 어답터’가 아닌 일반 구매자들로 수요층이 바뀌면서 수요가 정체된 상황이라는 분석인데요.
그렇다면 대당 지원 단가가 100만 원 더 낮아지는 내년에 올해보다 더 많은 전기차를 보급하는 일이 가능하냐는 것이 예정처가 제기하는 의문입니다.
● 수소승용차, 내년에 1만 1000대 보급 목표
수소차 보급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내년도 수소차 보급 예산은 7218억 원. 올해(5714억 원)보다 오히려 1500억 원 이상 늘었습니다.
충전 기반이 여전히 부족한 수소차의 경우 승용차뿐만 아니라 버스와 화물차 등으로 보급 방향을 확장·전환하면서 수소승용차 보급 예산으로는 이 가운데 2475억 원이 책정됐는데요.
정부는 수소승용차 역시 올해 6800대에서 내년 1만1000대로 보급 목표를 크게 높여 잡았습니다.
하지만 수소승용차 역시 전기차처럼 보급 계획 달성률이 2022년 57.2%, 2023년 26.8%로 저조했고 올해도 10월까지의 달성률이 36.8%(8월 기준은 30.4%)에 그치는 상황인데요.
예정처에서는 수소차 보급 실적이 연례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적정한 예산 편성인지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 차 업계, 가격 경쟁력 높이고 수소차 신차 출시
최근 여러 해 동안 정부의 보급 목표가 어긋나고 있다는 수치만 놓고 보면 예정처의 지적이 크게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야 하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친환경차 보급 목표가 달성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전기차의 경우에는 기존보다 가격을 낮춘 전기차들이 새롭게 출시되면서 대당 보조금을 낮추더라도 보급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인데요.
실제로 기아는 내년에 준중형 전기 세단 ‘EV 4’를 새롭게 출시하고 중국에서 먼저 내놓은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 5’도 국내 출시를 예고한 상황입니다.
수소승용차에서는 현대차가 2018년 출시한 ‘넥쏘’ 이후 7년 만에 신차를 내놓으면서 판매량 반등을 기대하고 있는데요.
현대차는 얼마 전 수소차 콘셉트카 ‘이니시움’을 공개하면서 수소차 신모델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 “보조금, 자동차·배터리 산업 육성의 핵심 수단” 목소리도
차 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의 내년도 친환경차 보급 목표가 ‘공격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최근 부진한 내수 경기와 전기차 수요 정체, 아직 열악한 수소 충전 기반 등을 고려하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인데요.
여러 해 동안 보급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국회에서의 예산 논의 과정에서 친환경차 보급 예산이 일부 삭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습니다.
다만, 친환경차 보급과 관련해서는 보급 목표 달성 여부만이 사업의 전부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국 산업의 가장 큰 기둥 가운데 하나인 차 산업이 친환경차 대전환을 마주한 상황에서 보급 예산을 통해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노력도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는 일부 예산이 덜 쓰이는 상황까지 각오하면서 친환경차 관련 사업을 지원하되, 지원 단가는 계속 낮추면서 전기차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유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통해 2030년까지 국내의 전기차·수소차 보급 대수를 450만 대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해 놓았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인데요.
한국의 대표적인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배터리 산업 역시 친환경차 보급 규모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친환경차 보급 예산은 앞으로도 정부의 중요한 지렛대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김도형기자 dodo@donga.com
올해 예산 2조 3193억 원보다 소폭 줄었지만, 내년도 전체 예산(677조 4000억 원)에 비춰봐도 여전히 작지 않은 수치입니다.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국회에서는 치열한 ‘예산 전쟁’이 이미 시작된 가운데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친환경차 보급 예산이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요.
전기차가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캐즘’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도 정부는 보급 대수를 더 높여 잡은 상황과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기아가 내년에 출시할 예정인 준중형 전기 세단 ‘EV 4’의 콘셉트카. 기아 제공
● 전기차 보급, 보조금 단가 낮추고 대수는 상향
규모가 큰 전기차 예산부터 보면 내년도 전기차 보급 예산은 1조 5218억 원. 올해 예산(1조 7340억 원)에 비해 2000억 원 이상이 줄었는데요.
전기차가 점차 대중화되는 만큼 정부의 보조금 예산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전기승용차 보급 목표 대수는 내년에 오히려 더 늘어났습니다. 올해 23만 3000대의 보급 목표가 내년에는 26만 대로 더 커진 것인데요.
올해는 대당 보조금이 400만 원이었지만 내년에는 300만 원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예산이 줄었음에도 보급 목표는 더 늘어난 것입니다.
● 3년 연속으로 전기차 보급 목표 못 채울 듯
문제는 최근 수년 동안 정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가 좀처럼 달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정처는 2021년 7만여 대의 보급 목표를 채운 이후 2022, 2023년에는 모두 보급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요.
올해도 10월까지의 목표 달성률이 44.4%(8월 기준은 34.8%)에 그치고 있습니다.
자료: 국회예산정책처
여전히 전기차 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매년 보조금은 줄어들고 ‘얼리 어답터’가 아닌 일반 구매자들로 수요층이 바뀌면서 수요가 정체된 상황이라는 분석인데요.
그렇다면 대당 지원 단가가 100만 원 더 낮아지는 내년에 올해보다 더 많은 전기차를 보급하는 일이 가능하냐는 것이 예정처가 제기하는 의문입니다.
● 수소승용차, 내년에 1만 1000대 보급 목표
수소차 보급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내년도 수소차 보급 예산은 7218억 원. 올해(5714억 원)보다 오히려 1500억 원 이상 늘었습니다.
충전 기반이 여전히 부족한 수소차의 경우 승용차뿐만 아니라 버스와 화물차 등으로 보급 방향을 확장·전환하면서 수소승용차 보급 예산으로는 이 가운데 2475억 원이 책정됐는데요.
정부는 수소승용차 역시 올해 6800대에서 내년 1만1000대로 보급 목표를 크게 높여 잡았습니다.
하지만 수소승용차 역시 전기차처럼 보급 계획 달성률이 2022년 57.2%, 2023년 26.8%로 저조했고 올해도 10월까지의 달성률이 36.8%(8월 기준은 30.4%)에 그치는 상황인데요.
예정처에서는 수소차 보급 실적이 연례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적정한 예산 편성인지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자료: 예산정책처
● 차 업계, 가격 경쟁력 높이고 수소차 신차 출시
최근 여러 해 동안 정부의 보급 목표가 어긋나고 있다는 수치만 놓고 보면 예정처의 지적이 크게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야 하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친환경차 보급 목표가 달성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전기차의 경우에는 기존보다 가격을 낮춘 전기차들이 새롭게 출시되면서 대당 보조금을 낮추더라도 보급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인데요.
실제로 기아는 내년에 준중형 전기 세단 ‘EV 4’를 새롭게 출시하고 중국에서 먼저 내놓은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 5’도 국내 출시를 예고한 상황입니다.
기아의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 5’. 기아 제공
수소승용차에서는 현대차가 2018년 출시한 ‘넥쏘’ 이후 7년 만에 신차를 내놓으면서 판매량 반등을 기대하고 있는데요.
현대차는 얼마 전 수소차 콘셉트카 ‘이니시움’을 공개하면서 수소차 신모델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 “보조금, 자동차·배터리 산업 육성의 핵심 수단” 목소리도
차 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의 내년도 친환경차 보급 목표가 ‘공격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최근 부진한 내수 경기와 전기차 수요 정체, 아직 열악한 수소 충전 기반 등을 고려하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인데요.
여러 해 동안 보급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국회에서의 예산 논의 과정에서 친환경차 보급 예산이 일부 삭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습니다.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콘셉트카 ‘이니시움(INITIUM)’. 현대차 제공
다만, 친환경차 보급과 관련해서는 보급 목표 달성 여부만이 사업의 전부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국 산업의 가장 큰 기둥 가운데 하나인 차 산업이 친환경차 대전환을 마주한 상황에서 보급 예산을 통해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노력도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는 일부 예산이 덜 쓰이는 상황까지 각오하면서 친환경차 관련 사업을 지원하되, 지원 단가는 계속 낮추면서 전기차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유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통해 2030년까지 국내의 전기차·수소차 보급 대수를 450만 대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해 놓았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인데요.
한국의 대표적인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배터리 산업 역시 친환경차 보급 규모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친환경차 보급 예산은 앞으로도 정부의 중요한 지렛대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김도형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