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는 내장재 형태가 깔끔하게 유지되도록 가죽 두께를 1mm로 균일하게 가공해 쓴다. 벤틀리 제공
가죽은 사람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써온 소재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할 뿐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 쓰이며 튼튼하고 오래가는 소재임이 입증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죽은 부드러운 촉감, 은은한 특유의 냄새, 보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특유의 질감으로 제품의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는 소재 중 하나다. 지갑이나 가방과 같은 액세서리는 물론, 의류나 가구에서도 가죽 제품은 고급으로 여겨진다.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금 과장을 섞어 표현하자면 차에 탔을 때 눈에 보이는 부분에 얼마나 가죽이 많이 쓰였으며 그 가죽의 질이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차의 고급스러움을 가늠할 수 있다. 프리미엄 또는 럭셔리 브랜드에서 자사 차의 고급스러움을 내세울 때 가죽과 관련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이유다.
자동차 내장재로서의 가죽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특성 중 하나는 내구성이다. 온도변화가 심하고 햇빛과 자외선 등 자극을 주는 요소가 많은 만큼, 환경변화가 크지 않은 곳에서 주로 쓰이는 일반 가구나 의류, 액세서리에 쓰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내구성을 갖춰야 한다. 많은 가죽제품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내장재로 소가죽이 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럭셔리 카의 내장재로 쓰이는 가죽은 충분한 내구성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뛰어난 내구성을 갖추는 것은 당연하고, 그와 더불어 차에 타는 사람의 감성을 채울 수 있도록 가죽 특유의 질감이 살아있고 촉감과 탄력이 뛰어난 최고급 제품이어야 한다. 따라서 원단 단계부터 대중차에 쓰이는 것보다 더 까다롭게 선별된다.
럭셔리 카에 쓰이는 가죽 원단의 품질은 엄격하게 관리된다.
가죽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고급차에 주로 쓰이는 천연가죽도 처리 방법이나 등급이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것은 풀 아닐린(full aniline) 처리한 풀 그레인(full grain) 가죽이다. 풀 그레인 가죽은 표면을 따로 가공하지 않아 본래의 질감과 무늬가 그대로 살아있는 것으로, 매끄러운 상태의 원피를 그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최상급 소재다. 풀 아닐린 처리는 원단 자체를 아닐린 염료로 염색하는 것으로, 가죽의 질감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리는 방법이지만 표면을 보호하는 층이 없어 관리하기 까다롭다. 자동차에서는 내구성을 고려해 염색한 원피에 아닐린 염료를 보호막처럼 코팅하는 세미 아닐린(semi-aniline) 처리를 한 가죽을 쓰는 경우가 많다. 세미 아닐린 가죽 역시 질감이 잘 살아있기 때문에 고급 가죽으로 꼽힌다. 고급 가죽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내파(Nappa) 가죽은 표면이 특히 부드러운 풀 그레인 가죽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 지역에서 특별한 가공방법을 통해 생산된 가죽에서 비롯된 이름이다.럭셔리 카에는 특유의 질감이 살아 있고 촉감과 탄력이 뛰어난 최고급 가죽이 쓰인다.
자동차에 쓰이는 대다수 부품이 그렇듯, 가죽 원단 역시 업체가 직접 생산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가죽 전문업체로부터 공급받지만, 자동차 업체가 세운 기준에 따라 납품받는 원단의 품질은 엄격하게 관리된다. 최상급 가죽은 주로 기온이 낮고 습도가 적당히 유지되는 환경에서 자란 소에서 나온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소는 피부 조직이 탄탄하고 표면이 건조하지 않아 탄력 있는 가죽을 얻을 수 있다. 롤스로이스는 주로 스위스와 독일 남부에서 키운 지멘탈(Simmental) 품종 소의 가죽을, 벤틀리는 콘티넨털 GT에 북유럽산 소 가죽을 쓴다. 특히 지멘탈 품종은 덩치가 커서 넓은 가죽 원단을 얻을 수 있다. 가죽을 얻는 소는 철조망 없이 넓게 트인 목초지에서 키우는 것이 필수다. 철조망에 긁힌 소에서 얻은 가죽은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들이 먹는 풀의 질도 균일하게 유지해야 소가 잘 자라는 만큼 가죽의 질도 좋아지게 된다.롤스로이스에 쓰이는 가죽은 사람이 앉은 상태에서 움직여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특수 표면처리를 한 것이다. 롤스로이스 제공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특수처리도 이루어진다. 롤스로이스에 쓰이는 가죽은 영하 10도로 냉각했다가 영상 100도로 급속 가열하고 다시 영하 10도로 냉각하는 과정을 열흘에 걸쳐 하루 24시간 내내 반복하는 시험 과정을 거친다. 이 같은 과정을 통과한 가죽만 사용함으로써 내구성이 보장된다. 특수 표면처리를 통해 사람이 앉은 상태에서 움직이더라도 마찰 때문에 소음이 생기지 않게 한다. 벤틀리가 신형 콘티넨털 GT를 내놓으며 강조한 것처럼, 대시보드 위쪽에 쓰이는 가죽에는 특별한 공정을 거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동반석 에어백이 설치되는 부분이다. 겉보기에는 주변 다른 부분과 매끄럽게 이어져 있지만, 에어백이 설치되는 부분은 특수 가공을 통해 에어백 작동 구조에 방해가 되지 않게 만든다. 이는 대시보드에 가죽을 쓰지 않는 일반 승용차에서는 고려되지 않는 부분 중 하나다. 벤틀리는 내장재로 쓰는 가죽 두께를 1mm가 되도록 가공한 것을 쓴다. 두께가 균일한 가죽은 수작업으로 봉제하기 쉬워 내장재의 형태가 깔끔하게 유지된다. 두꺼운 가죽에 비해 무게도 줄일 수 있다. 롤스로이스 한 대의 실내에는 소 열두 마리에서 나온 최상급 가죽이 쓰인다. 롤스로이스 제공
벤틀리 콘티넨털 GT에는 소 아홉 마리, 롤스로이스는 차 한 대의 실내를 꾸미는 데 소 열두 마리에서 나온 최상급 가죽을 쓴다고 한다. 차의 실내 표면을 생각하면 언뜻 지나치게 많이 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쓰이는 부분에 따라 이어지는 곳의 가죽 표면의 상태와 품질이 같아야 하기 때문에 한 마리 분 가죽 원단에서도 실내를 꾸미는 데 쓰이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원단에서 대시보드나 도어 안쪽, 시트처럼 넓은 부분을 감싸는 부분을 잘라내고 난 나머지 부분은 기어 레버나 각종 손잡이 등 상대적으로 면적이 작은 곳에 쓰고, 실내에 쓰고도 남는 것들 중에서 품질이 뛰어난 부분은 지갑이나 키 홀더 등 기타 액세서리 제작에 활용하기도 한다. 천연가죽은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동물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천연가죽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소고기를 먹는 한 가죽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죽은 도축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죽 가공 공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이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고 환경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천연가죽의 대안인 인조가죽도 석유화학제품인 만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잘 관리한 천연가죽은 수명이 무척 길다. 장기적으로 보면 천연가죽이 오히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경우도 있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소비자가 인조가죽을 고집하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굳이 인조가죽을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폐차된 차에서 남겨진 가죽 내장재가 새로운 제품의 소재로 업사이클링(upcycling)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차의 품격을 높이는 것은 물론 가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천연가죽만큼 럭셔리 카와 잘 어우러지는 내장재도 드물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