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넘어섰다.”
25일 현대자동차 콘퍼런스콜(실적설명회)을 마친 한 증권사 연구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당초 증권가에선 현대차의 3분기(7∼9월) 영업이익이 컨센서스(9496억 원)를 밑돌 것이란 예상이 나오긴 했다. 8000억 원대 수준을 유력하게 봤다. 실제 결과는 2889억 원으로 컨센서스보다 약 70% 낮았다.
이는 2010년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돼 비교할 수 있는 영업이익 규모 중 최저치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76.0% 줄어든 수치다. 영업이익률은 1.2%로 전년 동기 대비 3.8%포인트 하락했다.
○ “새 회계기준 체제 후 최악의 성적표”
현대차 실적 중 금융 부문을 제외하고 자동차만 놓고 보면 위기는 더 심각하다. 자동차 부문 계정 손실(2520억 원), 내부 생산법인과 판매법인 간 거래이익(연결조정 계정)을 합하면 3분기 자동차 관련 영업이익은 40억 원 수준이다. 전년 동기(9420억 원) 대비 99.6% 줄어든 수치다.
현대차의 실적 위기는 미국과 중국 시장의 회복세가 더딘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3분기 총판매량(도매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한 112만1228대로 나타났다. 미국 판매량은 그나마 전년보다 0.8% 성장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9월 미국 자동차 판매는 전년 동월보다 5.9% 줄어드는 등 시장 수요가 줄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다. 현대차 중국 판매량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봐도 6.2% 줄어들었다. 중국 시장은 3분기 자동차 판매량이 8.5% 줄어드는 등 미중 무역 갈등 여파로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에어백 제어기 리콜 및 엔진 진단 신기술(KSDS) 적용 5000억 원 등 일시적 비용 요인이 발생해 영업비용이 전년 동기보다 8.6% 늘어난 점도 영업이익 감소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고급차 등 수요가 늘어나는 차종을 강화하며 4분기(10∼12월)에 반등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 측은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을 겨냥한 신차 개발 일정과 글로벌 모델 투입 일정을 단축하며 판매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시장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무리한 경쟁을 하지 않고, 베이징현대의 판매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 부품업계 “정부 지원 호소”
글로벌 자동차 시장 환경은 한국 자동차에 불리하게 변하고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세계 자동차 수요의 65%가량을 차지하는 미국, 중국, 유럽의 하반기(7∼12월) 수요가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며 “아시아에서는 신흥국 위기설까지 돌고 있어 수요 하락, 금융 불황 등 총체적 난국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중국 시장 자동차 판매량은 6∼9월 4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BMW그룹, 다임러그룹,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올해 줄줄이 실적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자체 경쟁력 하락과 불리한 글로벌 시장 환경이 더해지면서 중소 부품업계의 어려움도 깊어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1차 부품 협력업체 중 상장사 89개의 절반가량인 42개사가 올 1분기(1∼3월) 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했다. 완성차 영업이익률이 줄어들면 협력사는 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어려워진다. 경남지역의 한 부품업계 대표는 “그나마 해외 자동차에 수출하는 곳은 괜찮지만 현대·기아차 비중이 90%가 넘는 곳은 ‘그저 앞이 안 보인다’며 한숨만 쉰다”고 전했다.
신달석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디엠씨 회장)은 “현대차가 적자가 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해야 할 만큼 부품업계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품업체들이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수출을 늘리려는 노력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동 유연성 제고와 신규 대출 지원, 만기 대출 연장 등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이은택·김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