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기 용인시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에서 램프선행설계팀 김정영 책임연구원(왼쪽)과 민경구 연구원이 램프를 살피고 있다. 왼쪽 램프가 모비스가 만든 3차원(3D) 램프고, 오른쪽이 기존의 일반 램프다.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가 세계 최초로 3차원(3D) 자동차 후미등(리어램프)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 리어램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이 제품을 현대모비스는 19일 경기 용인시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에서 동아일보에 처음 공개했다. 이 제품 개발에는 국내 한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결정적이었다.
최근 세계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는 전조등과 후미등 같은 램프가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램프는 차의 인상을 결정하는 요소이고, 특히 야간에 램프 불빛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최근 독일 아우디는 신차에서 여러 개의 발광다이오드(LED) 램프가 도미노처럼 순서대로 좌르륵 켜졌다 꺼졌다 하는 ‘다이내믹 턴 시그널 램프’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에 모비스가 개발한 3D 램프는 아우디의 램프보다 높은 기술이 접목됐다. 모비스는 불빛을 평면(2D)에서 입체(3D)로 끌어올렸다. 중요한 점은 ‘평면에서 입체를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날 눈으로 본 3D 램프는 50mm가량의 깊이감과 원근감을 구현했지만 실제 두께는 1.4mm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런 기술이 가능했을까.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세대 램프 개발을 놓고 고민하던 모비스는 2015년 초 ‘3D 램프’라는 콘셉트를 고안하고 개발에 들어갔다. 기존 후미등은 모양만 조금 다를 뿐 모두 평면적인 불빛이었다. 이를 입체로 바꾸면 훨씬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하고 미적(美的)으로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램프선행설계팀 민경구 연구원(41)과 김정영 책임연구원(30)이 주목한 방식은 홀로그램, 혹은 ‘렌티큘러(반원형) 렌즈’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전자제품의 보증서 스티커, 과거 유행했던 홀로그램 책받침 등에 쓰이는 방식이다. 얇은 스티커, 책받침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입체를 구현한다. 하지만 모비스는 이 분야에 기술력이 없었다.
모비스는 국내 중소기업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일일이 업체를 접촉하고 3D 램프 콘셉트를 설명했다. 10여 곳을 접촉했지만 다들 “자신이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던 중 경기도에 있는 A사가 제안을 듣더니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수락했다. 홀로그램 스티커 등을 만들던, 연 매출 400억 원 수준의 중소기업이었다. 그때부터 양사의 공동 연구가 시작됐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후미등은 불이 들어오면 내부 온도가 100도까지 올라간다. 그러다보니 애써 만든 렌즈가 녹아버리거나, 부품이 열을 이기지 못해 가스를 내뿜기도 했다. 곡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두께도 줄여야 했다. 거듭 소재를 바꾼 끝에 2.3mm였던 렌즈 두께를 1.4mm까지 줄였다. A사 대표는 “우리는 원래 스마트폰 케이스, 문구류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가혹한 고온 테스트를 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그만큼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고 말했다. 양사는 실패를 되풀이하며 렌즈의 화학 처리, 성분 분석, 소재 등에 노하우를 쌓아갔다. 그 결과 1년 반이 지난 2016년 말 3D 램프 개발에 성공했다.
모비스의 3D 램프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7∼12월) 현대자동차의 고급 신차에서 처음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모비스와 A사는 이후 시장의 반응, 해외 완성차 업체들의 주문 의뢰 등을 살핀 뒤 추가 양산이나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모비스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아직 A사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A사 대표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뛰어들 때 고민이 많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쌓은 기술력을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에 실패할 때마다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비스와 우리의 열정 덕분에 끝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