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가 좌초되는 듯했던 ‘광주형 일자리’의 불씨를 일단 살렸다. 노동계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가운데 현대자동차의 요구대로 당초 6월 합의 초안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다만 노동계의 최종 동의 여부가 확실치 않아 투자협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투자협약 후에도 현대차 노조의 반발이 예상된다.
4일 이병훈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은 “현대차 투자유치 최종안을 정리했다. 광주 노사민정협의회 공동 결의를 받아 현대차와 최종 투자협상 조인식을 가질 예정”이라며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6일 광주시청에서 조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잠정 합의한 최종안에는 초안에 있던 ‘주 44시간 근로, 초임 3500만 원, 경제성장률에 준한 임금 상승’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인사는 “광주형 일자리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여기까지 왔다. 이 정도면 거의 (합의가) 끝난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다만 광주시 관계자는 “아직 최종 합의는 아니다. 현대차는 노사민정협의회 공동 결의를 (투자의) 필수조건으로 보고 있다. 지역 노동계 등이 최종적으로 찬성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 일단 불씨 살린 광주형 일자리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자가 일반 완성차 업체 연봉의 약 절반을 받지만 정부와 광주시가 주택과 의료, 교육을 지원해 실질소득을 높이는 ‘노사 상생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다. 2014년 윤장현 전 시장이 공약으로 제시한 뒤 현대차가 2대 주주로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2022년까지 빛그린산단 부지 62만8000m²에 연간 10만 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세우는 구체적인 계획으로 발전했다.
올해 6월 초만 해도 현대차가 광주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며 광주형 일자리에 속도가 붙는 듯했다. 현대차는 마진이 낮아 생산비용 최소화가 중요한 경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을 ‘반값 연봉’을 제시한 광주시 공장에 위탁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9월 지역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광주시-현대차 협상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노동계를 다시 협상장으로 끌어내면서 광주시는 투자 제안 내용을 바꿨다. 지난달 14일 나온 광주시-노동계 합의문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원·하청 관계 개선, 노사 책임경영 등이 포함됐다. 현대차 측은 난색을 표했다. 연봉 조건부터 협력업체 처우 개선까지 초안 내용에서 180도 달라져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양측은 1차 협상 데드라인이던 지난달 15일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후 정치권에서 다른 지역 일자리로 바꾸면 된다는 등의 언급이 나오자 광주시가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꿨다. 지역 노동계로부터 포괄적 협상 전권을 위임받고 3, 4일 현대차와의 막판 협상에서 현대차에 제시했던 초안을 대폭 반영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 노동계 동의, 노조 파업 등 관건
최종 투자협약까지 남은 것은 노동계의 동의다. 앞서 현대차와 광주시는 6월 19일 투자협약 조인식을 하려고 했지만 임금협상 5년 유예 등의 조항에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5일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는 이용섭 광주시장 주재로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최상준 광주경영자총협회장, 백석 광주경실련 대표 등 노사민정협의회 위원이 참석한다.
한노총 윤 의장은 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종안이 적정 임금과 적정 근로시간, 원·하청 관계 개선, 노사 책임경영이라는 광주형 일자리 4대 원칙의 합의 정신을 크게 훼손하지 않아야 찬성할 수 있다”고 했다.
현대차 노조의 반발도 변수다. 현대차 노조는 4일 ‘광주형 일자리 협약 체결 시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르면 6일 파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수 kimhs@donga.com / 광주=이형주 / 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