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면에 나선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ICT 기업으로 체질을 변화하라”고 주문하면서 시작된 변화다.
3일 현대차의 2018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외 스타트업과 벤처펀드에 활발하게 투자해 본격적인 ICT 기업으로의 변신에 나섰다. 투자 지역도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인도, 이스라엘, 스위스 등 다양하다.
이륜차 기반의 물류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에 225억 원을 투자한 것이 지난해 단일 건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현대차는 자율주행 기술을 메쉬코리아의 물류 알고리즘(전산 논리 체계)에 접목해 무인 배달차량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스위스의 증강현실(AR) 전문 기업인 웨이레이에는 지난해 9월 113억 원을 투자했고, 협업을 통해 개발한 홀로그램 내비게이션을 1월 열린 ‘CES 2019’에서 선보였다.
모빌리티 플랫폼을 운영하는 글로벌 스타트업도 현대차의 투자 1순위 대상이다. 현대차는 호주(CND) 및 인도(레브)의 차량 공유 업체 외에 우리나라의 친환경차량 공유 업체 제이카에도 투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114억 원 규모로 조성된 ‘차이나 모빌리티 펀드’에 82억 원을 출자해 중국 스타트업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에 인색한 편이던 현대차는 정 부회장이 발탁한 삼성전자 출신의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사장)이 2017년 2월 합류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 사장은 전략기술본부에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팀과 CorpDev(기업 발전)팀을 만들어 스타트업 투자 전문가와 투자은행(IB) 업계 출신을 다수 영입했다. 메쉬코리아 투자를 주도한 신성우 부장과 메릴린치, UBS 등 외국계 대형 IB에서 잔뼈가 굵은 오재창 부장이 대표적이다. CVC팀은 국내외 스타트업 투자 실무를 담당하고 CorpDev팀은 글로벌 협업 파트너를 발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차가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자체 연구개발(R&D)과 기존 협력업체와의 협업만으로는 친환경차량,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과 편의성을 높인 모바일 플랫폼을 확보하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국내외 유력 ICT 기업이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첨단 기술과 유능한 인재를 확보한 뒤 직접 자율주행차량을 내놓고 AI 음성 인식 기능도 접목하는 것을 목격한 현대차가 자극을 받은 것이다.
현대차는 스타트업 육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창업가가 활동할 수 있는 시설인 오픈이노베이션센터를 서울, 미국 실리콘밸리,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세웠고 연내에 중국 베이징과 독일 베를린에서도 문을 열 예정이다. 현대차는 최근 국내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 특별회원으로 합류하며 창업 생태계 조성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제조업 기반 업체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특별회원으로 들어온 것은 현대차가 처음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현대차가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