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국내 자리 한정…해외로 시야 넓히길”
“BMW 최초의 동양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지난 10일 BMW 뉴 3시리즈 미디어 시승회에서 김누리 디자이너를 만났다.
김 디자이너는 BMW코리아가 최근 국내에 공식 출시한 뉴 3시리즈 모든 라인업의 내부 디자인을 모두 책임졌다. 독일 BMW그룹 본사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그녀는 이번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3시리즈는 BMW 역사의 시작점인 동시에 정체성과 가치를 구현해 내는 핵심 라인업이다. 1984년생, 한국 나이로 36세에 불과한 그녀가 이런 중책을 맡을 수 있었던 데는 BMW 특유의 개방적인 경쟁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김 디자이너는 “BMW에 있어 3시리즈는 코어(핵심)이기 때문에 인테리어 책임자를 선발하기 위해 토너먼트 식의 경쟁을 펼쳤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세대 3시리즈 개발을 위해 독일 본사 20여명의 디자이너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중국 상하이 스튜디오에 근무하는 디자이너까지 총 30여명이 경쟁을 펼쳤다.
이들은 먼저 스케치 형태의 디자인으로 새로운 3시리즈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여기서 선발된 4명이 더 세부적인 디지털 모델링을 내놓으면 최종경쟁을 펼칠 2명이 결정된다. 마지막 경쟁은 엔지니어, 인체공학, 소재 담당자 등과 함께 클레이 찰흙으로 실제 모델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비결에 대해 김 디자이너는 “당시 3시리즈의 핵심과제는 BMW 고유의 DNA는 유지하되 새로운 디자인을 찾는 것이었다”며 “이에 맞춰 회사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구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를 디자인하되 레트로(복고풍)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 여전히 디자이너로서 어려운 점”이라고 덧붙였다.
김누리 디자이너는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순수미술을 거쳐 시각디자인, 조형디자인까지 아우르며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해 기반을 착실히 닦았다. 그런데 왜 하필 자동차 디자인이었을까? 이 질문에 예상 밖에 ‘나사’(NASA 미국 항공우주국)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녀는 “처음엔 나사에서 우주선 디자인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우주선은 미적인 부분보다 엔지니어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스럽게 운송수단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며 “특히 자동차 인테리어는 작은 제품 들이 모여서 큰 디자인이 되는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김 디자이너는 대학 졸업 후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격 이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독일로 건너가 HS-포르츠하임(HS-Pforzheim) 대학원 운송기기디자인 전공을 시작했고 정비 학교에 들어가 자동차 정비 기능사, 검사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자동차의 기본구조를 이해해야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자동차 전반을 이해한 것은 원하는 디자인을 제대로 구현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김 디자이너는 “자동차 내부를 디자인할 때 엔지니어랑 조율할 일이 많이 생긴다”며 “디자인을 지킬 때도 기술적인 면을 알아야 잘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는 자동차 내부에 기술력을 최대로 집약하려 하고, 안정성을 위해서 이 기술적 파트에서 디자인의 영역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한다.
이러다보면 디자이너가 생각한 면, 선이 왜곡되고, 부피가 커지는 경우가 생긴다. 김 디자이너는 “엔지니어에게 기술 데이터를 받아서 살펴보고, 디자인의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으면 항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김 디자이너는 영화 ‘미션임파서블’에도 등장했던 친환경차 i8의 전신인 콘셉트카 ‘비전 이피션트다이내믹스’를 보고 BMW에 빠져들었다. 2012년 입사해 2013년 첫 경쟁에서 우승해 M4 GTS 인테리어 디자인을 이끌었다. 이후 2014년 M시리즈를 거쳐 2017년에는 ‘M’ 모델 최고사양 카본 소재 시트 디자인 경쟁에서도 우승해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있다.
김 디자이어는 향후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시야를 넓히라”고 주문한다. 그녀는 동양인 최초로 BMW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다만 익스테리어(외관) 디자인 분야에는 한국인 6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 좋은 자동차 회사가 있지만 자리는 한정돼 있다”며 “외국에서도 충분히 좋은 기회가 있으니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는 오픈 마인드를 갖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