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외곽의 목장에서 시승한 지프의 ‘올 뉴 2020 글래디에이터’. 진흙탕뿐 아니라 사진 속 돌길도 거뜬히 넘었다. 한국에는 2020년 출시 예정이다. FCA 제공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원조, 지프를 타고 오프로드 시승을 가기로 하는 날. 지프 스타일 ‘오프로드’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를 누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3일(현지 시간)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된 글로벌 기자들이 미국 새크라멘토 외곽 ‘올드슈거밀’이라는 와이너리로 모여들었다. 지프의 새로운 픽업트럭 ‘올 뉴 2020 글래디에이터’ 시승에 앞서 프레젠테이션을 듣기 위해서였다.
올 뉴 2020 글래디에이터는 랭글러를 베이스로 한 픽업트럭이다. 휠베이스를 늘려 뒷부분의 짐 공간을 확보했다. 스포츠, 스포츠S, 오버랜드, 루비콘 등 4가지 라인으로 나오고 한국에는 2020년 출시할 예정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벽돌 창고 앞에 놓인 선명한 레드 컬러의 루비콘에 올랐다.
먼저 온로드 주행. 도로 위에서 승차감을 높이는 기술을 적용했다는 지프 측의 설명처럼 일반 SUV 수준의 승차감을 자랑했다.
이 정도면 출퇴근용으로도, 카시트를 장착해 달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푸르른 목장이 나타났다. 길이 없었다. 여길 지나가라고? 전날 비가 와서 땅은 흠뻑 젖어 있었다. 여기서 글래디에이터 루비콘 모델에 탑재된 8단 자동변속기가 힘을 발휘했다. 고속도로에서나 이런 진흙길에서나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최적의 주행성능을 찾아가게 해준다는 게 지프 측의 설명이다.
차를 한번 믿고 느린 속도로 움직여봤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차가 흔들거리고 진흙물에 처박힐 듯했지만 그래도 글래디에이터는 묵묵히 나아갔다. 일부러 파놓은 듯한 진흙 구덩이에 들어갔을 때 왜 SUV가 차체가 높은지 새삼 깨달았다. 물속에서도 진흙 구덩이에서도 지나가기 위함인데 도심형 SUV 봇물 속에 SUV가 원래 이런 데 지나가라고 만든 차임을 잊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지프 SUV 랭글러를 기반으로 한 글래디에이터는 30인치(약 76.2cm) 깊이의 물도 건너갈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진흙 구덩이를 건너고 나니 이제는 암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도 지나가기 힘든 돌무더기를 자동차가 넘어가라고? 지프 직원들이 곳곳에서 핸들링, 기어 안내를 해주며 암벽을 넘어가게 도와줬다. 90도 수준의 오르막 내리막 암벽에 자칫 직원들을 덮칠까 보는 사람이 겁이 날 정도였지만 그들은 차가 코앞까지 와도 “이제 핸들을 꺾어라”라며 수신호를 보냈다. 그럴 만큼 차에 대한 믿음이 깊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루비콘 모델은 크롤비(Crawl ratio)가 무려 72.2 대 1에 달한다. 크롤비는 얼마나 장애물을 잘 넘어가느냐를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암벽을 넘어간 글래디에이터. 안내하던 직원들이 박수를 쳤다. 이탈리아, 푸에르토리코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의 얼굴도 상기돼 있었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듯했다. 자율주행차가 세상을 지배한데도 이런 운전의 재미를 찾는 사람들은 막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바퀴와 차체 백밀러까지 온통 진흙이 튄 채로 목장을 떠나 다시 온로드로 들어섰을 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랭글러만으로도 신나게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데 ‘왜 ‘픽업트럭인가’에 대한 답은 지프가 글래디에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 공개한 콘셉트카에서 엿볼 수 있었다. 5일(현지 시간) 미국 미시간주 오번힐스 FCA 본사에서 공개한 6대의 콘셉트카는 픽업트럭과 함께할 수 있는 갖가지 라이프스타일 전시장과도 같았다.
그중에서도 기자들의 시선을 잡은 것은 캠핑카 콘셉트의 ‘지프 웨이아웃’. 짐을 싣는 트럭 부분에 사다리와 지붕이 설치돼 있다. 손잡이를 올리면 지붕 위에 커다란 텐트가 만들어진다. 이른바 ‘루프톱 텐트’인 것이다. 텐트에서 바닥까지 펼쳐지는 대형 캐노피(천막),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까지 ‘내가 가는 곳이 캠핑장’ 포스를 뿜어냈다.
팀 쿠니스키 지프 브랜드 북아메리카 총괄은 “올 뉴 지프 글래디에이터는 모든 아웃도어 어드벤처를 위한 궁극의 차량”이라고 말했다. 콘셉트카까지 보고 나니 그 말이 실감이 났다.
새크라멘토·오번힐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