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체들이 미래 시장 대비에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2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미국계 자동차 기업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프랑스의 르노그룹에 합병을 제의하자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많은 외신이 갖가지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 빠지지 않는 단어는 ‘절박함(desperation)’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100년 만에 일어나고 있는 자동차 시장 패러다임 변화에 살아남으려면 돈과 기술이 필요하다. FCA의 합병 제안은 협업을 통해 값비싼 미래차 투자비용을 아끼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블룸버그는 양 사 합병에 대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파산 직전에 놓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경쟁사 포드에 인수합병(M&A)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양 사가 모두 적자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르노나 FCA가 이익을 내고 있다. 그만큼 미래 대비가 절박하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고 평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기차는 팔수록 손해나는 구조다. 아직 대중화되지 않아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했고, 배터리 수급 등 난제가 적지 않다. 생산량 중위권 기업인 FCA는 배터리 구매 협상력에서 떨어지고, 양산 규모가 작아 팔수록 손해 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WSJ에 따르면 FCA는 전기차 한 대를 팔 때마다 2만 달러(약 2370만 원)씩 손해를 봤다고 한다. 반면 르노그룹은 닛산과의 제휴 덕에 일찍부터 전기차 기술력과 생산 효율성을 높여 왔다.
르노는 FCA와 합병하면 북미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된다. FCA는 명확한 브랜드 정체성을 가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 지프, 럭셔리카 마세라티와 같은 르노에 없던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FCA는 보도자료를 통해 “양 사의 합병으로 50억 유로(약 6조6410억 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차에 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업체를 새로운 경쟁자로 맞아야 한다. 자율주행이나 연결성과 같은 기술 변화뿐 아니라 공유경제와 같은 비즈니스 방식의 변화까지 대비해야 한다. 폭스바겐, 도요타 등 글로벌 1, 2위 기업이 원가 절감은 물론 협업, 투자, 인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합종연횡에 나서는 이유다.
폭스바겐은 올 초 포드와 포괄적 제휴를 발표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두 회사는 서로 지분을 교환한 것은 아니지만 공동위원회를 만들어 상용차 부문 공동 개발부터 자율주행, 전동화, 모빌리티 서비스까지 포괄적으로 협력에 나선다. 차는 함께 개발하되 각자의 브랜드로 파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자체적으로 모빌리티 기업 모이아를 설립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는 자동차 클라우드 제휴에 나서는 등 협업이 가장 활발한 기업으로 꼽힌다. 미국 자율주행 기업 오로라와도 도요타나 현대차보다 먼저 손을 잡았다.
폐쇄적인 문화로 유명했던 도요타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와 공동 출자해 모빌리티 서비스 모네트를 설립한 이후 활발히 스타트업과 에너지 기업에 투자하는 중이다. 특히 미국의 우버, 동남아의 리프트 등 글로벌 공유서비스 시장 투자가 활발하다. 하이브리드 차량에 강했던 도요타지만 올 초 파나소닉과 손잡고 배터리 설계 및 제조에 뛰어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대차도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발 빠르게 협업과 투자를 강화하는 추세다. 도요타가 투자한 그랩에 3000억 원가량 투자하고, 최근에는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전기차 리막(리마츠)에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최근 칼라일그룹 초청 대담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비즈니스를 전환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이라며 활발한 협업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