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 교섭 중 총 15일 동안 이어진 부분파업은 한국GM 노사 모두에게 큰 생채기를 남겼다. 노조의 잔업과 특근 거부, 부분파업으로 인한 누적 생산 손실은 2만5000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발생된 손실은 6만대 수준으로 전해지는데 이를 포함하면 올해 손실만 8만5000대 규모다. 이는 작년 한국GM 전체 판매량인 41만대의 20% 수준이다. 경영정상화를 절실하게 추진 중인 한국GM 입장에서는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노조 파업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부품기업들의 숨통마저 조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심지어 한국GM 협력부품업체 모임인 한국GM협신회 소속 회원사 사장과 임직원 100여명이 지난 19일 늦가을 장대비가 내리는 아침에 한국GM 서문에서 ‘살려달라’고 호소하면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극적으로 이뤄진 임단협 잠정합의에 대해 업계에서는 안도의 한 숨을 쉬는 모습이다. 지금이라도 ‘발목잡기’ 오명을 벗기 위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임단협을 타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모인다.
특히 경영정상화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입증해야 하는 한국GM에게는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실제로 연말연시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노조는 올해 교섭을 마무리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내년 교섭에서 다시 다루겠다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한 순간이다. 지난해 임단협을 올해 상반기에 마쳤는데 올해 임단협을 다시 내년으로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노조 측이 다른 요구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 한국GM 사측이 제안할 수 있는 ‘카드’는 없다는 평가다. 한국GM은 올해 8만5000대 넘는 생산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에 흑자전환 달성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파업 등으로 인해 일선 현장 직원들은 개인당 약 300만 원의 임금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연말 정년퇴직자들의 경우 평생 모은 퇴직금에서 손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회사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것이 노조 때문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경영정상화에 힘을 보태야 한다.
한국GM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따가운 시선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번 교섭을 바라본 제너럴모터스(GM) 글로벌 본사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스티브 키퍼 GM 수석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GM 노조가 생산물량을 인질로 잡아 재정적 타격을 주는 만큼 앞으로 한국GM에 신차 등 투자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GM 본사의 부정적인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생산을 볼모로 글로벌 본사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올해를 무사히 넘기더라도 벌써부터 내년 교섭이 우려되기도 한다. 내년에 파업이 재발할 경우에도 GM 본사가 인내심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한국GM ‘철수설’이 재점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한국GM 노조 파업에 대해 “GM 본사에 철수할 명분을 주는 자해행위”라며 “노조 파업으로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GM이 철수한다면 산업은행의 답변도 궁색할 수밖에 없고 철수를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섭 중인 노조 측 자세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노사의 원만한 합의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속 글로벌 시장 회복이 요원한 상황에서 한국GM이 경쟁력과 고용안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만여 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고 수십만 명의 협력사 기반 간접 고용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GM 노조는 이번 잠정합의안을 통해 신속하게 조합원 투표를 마무리하고 임단협을 타결시켜야 한다. 사측은 이번 교섭을 통해 알게 된 노조의 고충과 직원 정서를 바탕으로 개선된 보완책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한국GM 노사가 길었던 올해 임단협을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미래를 향해 정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