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레몬법’ 적용 사례가 처음 나왔다. 대상 차종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2019년식 S 350 4매틱)’다. 이 차는 정차 시 시동이 자동으로 꺼져 연료 효율을 높이는 ISG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결함이 발견됐다. 국토교통부는 ISG 결함 수리가 어렵다는 판단과 함께 경제성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교환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19년 도입된 한국형 레몬법은 신차 구매 후 1년 이내(주행거리 2만㎞ 이내) 동일한 중대 하자가 2회 이상, 일반 하자가 3회 이상 재발할 경우 제조사에 신차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레몬법 적용 여부는 국토부 산하 별도 조직인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가 중재부를 거쳐 최종 판정한다.
그러나 차량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공식적으로 교환이나 환불 받는 건 극히 드물다. 업계에선 이번 벤츠 사례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유가 있다. 그동안 완성차업체들은 레몬법 판정의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강신유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위원장은 “완성차업체들이 법적 효력이 있는 레몬법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한다”며 “차량 하자에 이견이 없을 경우 소비자 불만에 적극 대응하도록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국토부 심의위원회 판정이 끝난 207건 가운데 소비자 신청 취소는 161건에 달한다. 판정은 46건. 문제제기를 했던 차주들 약 77%가 도중에 중재 절차를 포기한 셈이다. 중재 내용이 비밀사안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형 레몬법의 또 다른 걸림돌은 중재 기간에 있다. 심의위원회 사무국에 따르면 사건 접수 후 중재 단계까지 가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된다. 올해 새롭게 구성된 심의위원회 중재부도 지난해 6월 접수된 사건 판정 절차를 이제야 밟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차주들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신고 차량이 문제점을 보존한 상태에서만 중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결함차를 6개월 넘게 방치해야 판정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심의위원회 위원 30명은 교수진(14명)과 법률자문단(9명)을 주축으로 국토부 자동차정책과·국립과학수사연구원·소비자 단체 등으로 구성됐다. 이중 교환·환불 중재 업무는 고작 3명이 전담하고 있다. 1월 현재까지 소비자 중재 신청은 총 744건, 지난해에만 668건이 몰렸다. 위원 한 사람당 해결해야할 사건이 200건 이상이다. 중재 거점도 문제다. 현재 중재사무소는 서울 양재동 한 곳뿐이다. 지방 생활권의 사건 당사자들이 어려운 발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함께 각종 결함에 대해 자동차 제조사가 직접 나서는 진상규명 시스템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는 모든 결함 유무를 운전자가 직접 밝혀야 하는 구조여서 분쟁 시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소비자들도 레몬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접수하면 교환해준다는 과잉기대심리가 있다”며 “소음이나 진동 같은 주관적인 주장이나 간헐적인 현상으로 무리한 요구을 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사 또한 애초에 소비자 주장을 관심 있게 듣고 전문가 입장에서 설명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