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현대차그룹 제공)© 뉴스1
‘애플카’를 업고 달리던 현대차그룹의 질주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8일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애플과의 자율주행차(애플카) 관련 협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전날 공시를 통해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부품업체인 현대모비스도 같은 내용을 공시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이같은 발표로 그동안 각종 설만 난무하던 애플과의 자율주행차 개발은 일단락된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안유지’ 방침이 협상 중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보안유지에 민감한 애플이 대대적인 보도에 부담을 느끼고 협상 중단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다.
지난 5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애플과 현대·기아차 간의 협상이 중지됐다며 현대차 측 관계자들의 발언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노출되는 것에 애플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자동차 전문 매체인 오토모티브 뉴스도 “애플이 현대차와 협상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의를 중단했다”고 전했다.
애플은 협력사에 악독한 수준의 비밀유지 계약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어길 때에는 가차 없는 위약금이나 계약 종료 등으로 응수한다. 실제 애플은 생산시설을 운영하지 않아 아이폰 등 주력제품도 협력사에 위탁 생산을 맡기는데 공개된 협력사는 폭스콘과 TSMC 정도에 불과하다.
더불어 자칫 애플과의 협력 관계에서 현대차그룹이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처럼 생산기지화될 수 있다는 우려와 보안 문제 등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이같은 우려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로이터통신은 이에 대해 “현대차 내부에서 애플카 위탁제조업체가 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컸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애플과 현대차가 2018년부터 협력을 논의했으나 현대차가 외부 업체와의 협력을 꺼리는 탓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애플과 현대차그룹의 협상이 이처럼 종료된 것으로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협상 재개에 대한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번 공시를 통해 애플과 ‘자율주행’ 관련 협의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다수의 해외 기업과 ‘자율주행 전기차’ 협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애플과의 협의가 진행되지 않는 대상을 ‘자율주행’으로 적시한 것으로, 이에 따라 전기차 생산과 관련해서는 협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세계적으로 애플카를 위탁해 양산할 수 있는 완성차 업체의 수가 적다는 점도 협상 재개 가능성을 키운다. 현재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전용플랫폼을 갖춘 곳은 GM과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정도로 알려졌는데, 특히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세계 5위권 수준의 완성차 생산 기반과 2위권의 친환경차 판매 실적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 역시 협상이 결렬됐다고 단정 짓지는 않았다. 애플이 생산차 업체를 여러 곳 선정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