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기아가 2030년까지 21조 원을 투자해 국내 전기차 생산능력을 144만 대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생산량의 45%를 ‘메이드 인 코리아’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후 나온 첫 번째 대규모 투자 발표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필두로 정부의 미래 모빌리티 산업 정책에 적극 호응하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현대차그룹은 18일 연간 35만 대 수준인 국내 전기차 생산 역량을 2030년까지 4배로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현대차그룹은 3월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2030년 전기차 생산 목표를 총 307만 대로 제시한 바 있다. 이날 발표로 2030년 생산목표가 323만 대로 소폭 상향됐다. 특히 이 중 45%인 144만 대를 국내에서 생산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한국을 전기차 생산 허브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경기 화성시의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는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생산 설비가 신설된다. PBV는 사용 목적에 맞춰 제작된 간결한 구조의 이동 수단을 뜻한다. 2023년 상반기(1∼6월) 오토랜드 화성 내 일부 시설을 변경하는 공사를 시작한다. 2025년 하반기(7∼12월)에는 PBV 전용 플랫폼 ‘eS’를 기반으로 한 PBV를 양산할 계획이다. 생산량은 2030년 최대 15만 대까지 늘어나게 된다.
전기차 연구개발(R&D)과 충전 인프라 확대에도 투자를 늘린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3월 초고속 충전 설비 ‘이피트’, 올해 4월에는 충전 사업자들을 위한 전기차 충전 서비스 플랫폼을 선보였다. 국내 부품 협력사들이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새로운 부품을 개발하고 기술 컨설팅을 진행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이 국내 투자를 강화하는 건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주요 기관들이 내놨던 2030년 전기차 시장 규모 약 2700만 대를 기준으로 점유율 12%를 목표로 제시해 왔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 사이에서도 2030년 일본 도요타 350만 대, 미국 스텔란티스 500만 대 등 전기차 증산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2030년 2000만 대를 팔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이 점유율 12%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생산 물량을 더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투자 조건과 국가 간 관계 등 변수가 많은 해외보다 단기간 집중 투자가 가능한 국내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미국 전기차 공장 신설 발표를 앞두고 국내와 해외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결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