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정년 연장’을 강하게 요구하는 현대자동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해 사실상 쟁의권을 획득했다. 이후에도 노사 간 교섭은 이어지지만 의견 차가 커 노조의 파업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임·단협 문제로 실제 파업에 나서면 2018년 7월 이후 5년 만이다.
● 현대차 노조, 5년 만의 파업 수순
2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이날 오후 4만4000여 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모바일로 쟁의행위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찬성률 88.93%(재적 인원 대비)로 가결됐다. 이에 따라 중앙노동위원회가 28일 조정 중단 결정을 내리면 현대차 노조는 그때부터 합법적으로 파업에 나설 수 있는 쟁의권을 획득한다. 노조는 앞서 18일 교섭 결렬 선언과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한 바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기본급 18만4900원(호봉 승급분 제외) 인상, 전년도 순이익 30%(주식 포함) 성과급 지급, 월 기본급의 900% 상여금 지급, 각종 수당 인상과 현실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별도 요구안에는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 시기와 연동해 최장 만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대차 노조는 쟁의권 획득 이후 교섭과 파업 여부 결정, 파업 준비 등을 담당할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30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임금, 성과급, 별도 요구안(정년 연장 등), 단체협상 개정까지 하나 된 투쟁으로 쟁취하자”라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에 대해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시대로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가운데 고용 불확실성에 대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측은 임금 안에 대해선 노조와 논의를 더 거친 뒤 임금 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년 연장은 사회적 여론을 고려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정 정년 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타협점을 마련하기 힘든 지점이라 자동차 업계에선 정년 연장이 노사 협상의 주요 난관으로 떠올랐다는 의견이 많다.
● ‘정년 연장’ 산업계 화두로 떠올라
정년 연장은 현대차뿐 아니라 올해 산업계 전반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금속노조 최대 지부인 현대차만 해도 지난해 기준 50세 이상 임직원 비율이 43.7%에 달할 만큼 산업계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기아와 포스코, HD현대 계열사 등의 노조도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정년 연장을 핵심 과제로 포함시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또한 최근 법정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 시기에 맞춰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할 것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했다.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연령층이 전체의 20% 이상인 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경영계에선 기업 부담을 늘리고 청년들의 취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아직도 기업 현장은 과거 연공 중심 임금체계가 지배적”이라며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되지 않으면 정년 연장은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줄 우려가 크다”라고 했다.
정부는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정년 이후 계속 고용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경사노위는 지난달 27일 정년 연장 문제 등을 다룰 ‘초고령사회 계속 고용 연구회’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경사노위는 단순히 정년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임금체계 개편이 동반되는 정년 연장과 폐지, 재고용 등을 중점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