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가 올해 90%에 육박하는 높은 파업 찬성률을 달성해 ‘정년연장’ 문제가 노조원들의 나이를 불문하고 대세로 자리 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정년연장은 50대 노조원들만 관심이 있는 제도라는 인식이 강했다.
노조는 사측이 교섭재개를 요청한 만큼 당장 파업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년연장에 대한 사측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파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이날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차후 노조 일정을 논의한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교섭재개를 요청했기 때문에 이견이 없다면 교섭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며 “당장 파업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앞서 노조는 사측이 올해 임단협 일괄 안을 제시하지 않자 지난 18일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이어 지난 25일에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전체 조합원의 88.93%가 파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 대비 찬성률은 91.6%에 달한다.
통상 현대차 노조의 파업 찬성률이 70%대였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찬성률은 역대 최고치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파업 찬성률은 71.8%였다. 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모바일 전자투표 방식이 투표율을 높인 가운데 ‘물러서지 않겠다’는 노조의 강경 분위기가 역대 최고 찬성률을 끌어냈다는 후문이다.
올해 노조는 기본급 18만490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전년도 순이익 30%(주식 포함)를 성과급으로 지급해 상여금 900%, 각종 수당 인상과 현실화 등을 요구했다. 특히 별도 요구안에 정년연장을 담았다. 노조는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 시기와 연동해 최장 만 64세로 연장하라고 사측에 요구한 상태다.
중장년 조합원이 많은 만큼 지금의 정년으로는 3년간 소득 공백이 우려된다. 노조에 따르면 올해 50세 이상 조합원(2만2263명) 비율은 전체 조합원의 52%에 달한다. 지난 4월 실시한 확대간부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9%는 정년연장을 올해 임단협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의제로 꼽는다.
◆청년 조합원도 “시니어 촉탁제 폐지, 정년연장 수용” 주장
노조는 정년연장과 거리가 먼 젊은 조합원들도 정년연장에 동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 관계자는 “50세 이상 조합원들은 물론 현장에서 일하는 40대 조합원들도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특히 2030 조합원들까지 시니어 촉탁제가 잘못됐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고 정년연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단 연구직에 종사하는 2030 조합원의 경우 8년이 지나면 대부분 책임연구원이 되기 때문에 조합원 자격을 잃는다”며 “이들의 경우 정년연장보다는 성과급에 관심이 더 많다”고 덧붙엿다.
현대차는 2019년 노사 합의로 도입된 시니어 촉탁제를 운영 중이다. 시니어 촉탁제는 정년 퇴직자를 선발해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이다. 노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임단협 요구안에 담았다. 울산공장에서 근무하는 30대 조합원 김모 씨는 “시니어 촉탁제는 일종의 임금피크제이기 때문에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노조의 이같은 전방위적인 정년연장 압박에 사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일 기업이 이를 실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년연장을 올해 임단협 핵심안으로 제시한 기아, 포스코, HD현대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섭재개 카드를 꺼낸 사측은 일단 노조와 대화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년연장을 비롯한 주요 현안들은 사측 입장 변화가 가능하다면 극적 타결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노조도 사측이 정년연장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표면상으로는 정년연장을 내세워 성과급 등 다른 요구 수용에 초점을 맞추려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일부에서 강경 반응이 나오는 만큼 파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4년 연속 무분규 타결로 잠잠한 행보를 보인 집행부는 올해부터 투쟁 강도를 높이고 있다.
안현호 지부장은 지난 8일 교섭에서 “정년연장은 현장에서 절실하게 요구하는 부분”이라며 “파국으로 갈지는 사측의 몫”이라고 날을 세웠다. 현대차 노조가 실제 파업에 들어간다면 지난 2018년 이후 5년 만의 파업이 나올 수 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