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세계 자동차 업계를 강타했던 부품 공급 부족으로 인한 생산 지연 현상이 완화되면서 북미 시장을 비롯한 주요국 신차 재고량이 늘고 있다. 동시에 유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인한 구매력 감소 여파로 소비자들의 저가 모델과 소형차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미 자동차 시장의 신차 재고량은 이달 들어 전년 동기 대비 68%(83만7000대)가 늘어난 206만 대를 나타냈다. 차량용 반도체를 비롯한 자동차 부품 수급난이 본격화한 2021년 4월 이후 처음으로 200만 대를 넘어섰다. 자동차 시장 조사기관 콕스오토모티브 또한 이 기간 미국 신차 재고량을 공급일로 환산한 수치는 46% 늘어난 58일로 업계가 통상적인 수준으로 보는 60일 기준에 근접했다고 분석했다.
부품난 완화와 함께 고금리가 맞물리며 자동차 시장은 대형·고급차보단 가성비가 높은 소형차 위주로 소비 시장 추세가 넘어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토모티브뉴스는 “가격이 낮은 모델보다는 전기차(EV)를 포함해 고가 차량의 신차 재고가 높게 나왔다”고 했다. 콕스오토모티브 역시 “가격이 높을수록 재고도 많아지는데 6만∼8만 달러(8000만∼1억 원) 가격대의 차량 재고량은 77일(공급일로 환산)로 가장 길었다”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신차 대기기간이 1년을 훌쩍 넘겼지만 현대자동차의 9월 초 자동차 납기표에 따르면 전 차종의 평균 출고 대기기간은 2.8개월로 1년 전 8.8개월 대비 6개월가량 줄었다. 특히 EV와 고가 차량일수록 그 감소 폭은 컸다.
지난해 9월 각각 10개월과 12개월이 걸리던 제네시스 G80과 현대차 아이오닉5(EV)의 평균 출고 대기기간은 올해 들어(9월 초 기준) 모두 1개월로 줄었다. 이 기간 시작가 2800만 원대인 쏘나타 가솔린 모델은 평균 출고 대기기간이 4개월에서 8개월로 늘어났다.
이처럼 고가 모델 선호도가 떨어진 건 엔데믹 이후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실질 구매력이 감소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량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의미다. 정부의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가 6월 종료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강화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경차 판매량도 급증하는 추세다. 자동차 시장 조사업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8월 국산 승용차의 신차 등록 대수(판매량)는 전년 같은 달보다 6.9% 감소했다. 그런데 이 기간 기아 레이와 모닝, 현대차 캐스퍼 등 경차 모델 3대가 평균 16.3%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월간 판매량 상위(Top)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 등으로 차량 유지비가 늘어나고 소비 지출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좋은 경차와 같은 소형 차량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이례적이었던 신차 공급 부족의 시대가 저물고 기존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