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필리핀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하면서 국내 자동차업계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필리핀 자동차 시장은 일본산 자동차 점유율이 80%가 넘지만, 한국산 자동차가 무관세 적용을 받으면 뒤집기를 시도할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한-필리핀 FTA가 내년 상반기(1∼6월) 중 국회 비준을 통과하면 한국산 자동차에 적용되던 5% 관세가 0%로, 5∼30%이던 자동차부품 관세도 0%로 조정된다. 한-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FTA를 통해 본래 30%에 달했던 자동차 관세가 5%로 낮아졌는데, 이 문턱마저 없앤 것이다.
판매 1, 2위를 지키고 있는 도요타와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차 브랜드의 필리핀 시장 합산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82.5%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기아는 점유율 1.3%로 10위, 현대차는 0.8%로 14위를 차지하며 존재감이 약하다. 지난해 판매량 기준 글로벌 3위였던 현대차·기아의 위상에는 훨씬 못 미치는 성적표다.
하지만 한-필리핀 FTA가 발효되면 한국산 자동차가 무관세가 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산 자동차의 경우에는 2008년 발효된 필리핀과의 경제동반자협정(EPA)을 통해 배기량 3000cc 이하인 차량에는 관세 20%가 적용된다. 배기량이 그 이상이면 관세는 없다.
자동차 부품 산업도 무관세가 되기에 수출 활로가 트일 수 있다. 지금껏 관세가 0%인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와의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그동안 필리핀 대상 자동차부품 수출은 2020년 3185만 달러(약 423억 원)에서 2021년 2889만 달러(약 383억 원), 2022년 2842만 달러(약 377억 원)로 해마다 줄어드는 양상을 보여왔다.
업계 관계자는 “필리핀이 현재는 4륜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 위주의 시장이지만, 전 세계 13번째 인구 대국으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현대차·기아가 강세를 보이는 전기차 분야에서 앞으로 일본차들과 경쟁을 벌여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