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내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된 중국 전기차가 국내 보조금을 발판 삼아 한국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특히, 승용차보다 보조금이 두 배나 많은 전기화물차의 1∼7월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0%가 늘어났다. 미국 중국 등 해외로 진출할 때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국산 전기차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환경부 무공해차통합누리집에 따르면 올해 구매 보조금을 받는 전기화물차 50종 중 14종(28%)은 중국산 차량이다. 지난해 보조금을 받는 전체 전기화물차 26종 중 중국산은 5종(약 19%)이었는데, 1년 새 차종이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전체 차종이 2배로 늘어난 것을 감안하더라도 빠른 증가세다.
판매 대수도 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신규 등록(판매)된 중국산 전기화물차는 총 1358대로, 작년 같은 기간(1141대)에 비해 약 20% 증가했다. 8월 신규 등록된 수입 상용차 상위 10종 중 4종이 중국 전기화물차다. 1, 2위는 지리자동차의 ‘SE-A’와 신위안자동차의 ‘이티밴’이다. 중국 전기화물차는 8월 한 달에만 350대가 판매됐다. 같은 달 보조금을 받고 출고된 전체 전기화물차(2700여 대)의 약 13% 수준이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무공해차 보급 확산을 위해 전기화물차 한 대당 최대 2350만 원의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다른 나라 대비 높은 구매 보조금이 해외 전기차 진출을 도왔다”고 분석한다. 해외 판매는 추가 비용이 들어 가격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국내 보조금이 이를 상쇄한다는 것. 실제 지리자동차 측은 ‘Se-A’의 국내 판매 가격이 3980만 원이지만 ‘경남 거창에서 소상공인 보조금까지 받을 경우 1270만 원에 살 수 있다’고 홍보한다. 반면, 환경부가 올해 초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해 국산 전기차에 유리한 개편안 초안을 마련했지만 미국 중국 등 수입차 업계의 반발에 보조금 차등 지급 폭을 조정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재활용 가치가 떨어져 폐기물이 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쓰는 자동차에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다수 중국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배터리 밀도가 400Wh 이하로 낮아 주행거리가 짧고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를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LFP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주로 사용하는 폐배터리 처리 기술로는 LFP 배터리에서 리튬 외의 다른 원료를 회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에서도 LFP 폐배터리를 재활용하지 않고 매립하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LFP 폐배터리가 재활용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폐배터리 재활용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세계 2위 전기차 시장인 유럽연합(EU) 의회는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원료의 재활용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의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을 통과시켰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