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전기차 국고 보조금이 올해보다 차량 한 대당 평균 100만 원 줄어들면서 완성차 업계에 그늘이 드리웠다. 가뜩이나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둔화됐는데 보조금까지 깎이면 내년에도 반등의 실마리를 잡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2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에서 확정된 환경부의 내년도 전기차 보급 지원 예산은 총 1조7340억 원이다. 전기 승용차·버스·화물·이륜차 보급에 올해 1조9180억 원을 지원했던 예산이 내년에는 9.6% 줄어드는 것이다.
결국 내년에 전기 승용차를 구매하면 올해보다 보조금이 줄어든다. 환경부는 전기 승용차 한 대당 평균 400만 원의 국고지원금이 나가는 것을 상정하고 예산을 짰다. 올해는 한 대당 평균 500만 원이 지급되도록 설계했는데 100만 원이 줄어든 것이다. 2021년에는 700만 원이었던 평균 지원금이 매년 100만 원씩 줄어드는 추세가 올해도 예외 없이 이어졌다.
전기차 인센티브 축소는 세계적 추세다. 중국, 영국, 스웨덴 등은 올해부터 전기 승용차 보조금 혜택을 폐지했다. 당초 내년 말까지는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유지하려던 독일도 1년을 앞당겨 17일부터 신규 신청을 받지 않기로 했다. 신차 중 전기차 비율이 80%대에 달하는 노르웨이는 올해부터 전기차 대상 부가가치세와 자동차구매세 면제 혜택을 중단했다. 이제는 보조금에 기대지 말고 완성차들이 자체 원가 절감으로 승부하라는 신호다.
전기차 보급이 상대적으로 빠른 유럽이나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도 전기차 보조금 삭감 속도가 가파르자 자동차 업계에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직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데다 전기차가 비싸다고 생각한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 1∼11월 전기차 판매는 지난해 동기 대비 3.6% 감소한 14만6494대에 그쳤지만, 하이브리드는 44.3% 늘어난 33만5211대 팔렸다.
이쯤 되자 업계에서는 외산 전기차에 돌아가는 전기차 보조금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미국이나 프랑스가 사실상 역내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한국 정부도 국산 전기차 생태계에 보조금을 몰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테슬라가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해 들여오는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델Y가 국내에서 무서운 속도로 팔리면서 이러한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7월 출시된 중국산 모델Y는 지난달까지 1만1059대가 판매됐다. 올해 수입 전기차 중 1만 대 넘게 팔린 것은 모델Y가 유일하다. 본래는 7000만∼8000만 원 수준이었던 모델Y가 100%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5699만 원으로 가격을 낮춰 들어오자 ‘전기차 판매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를 국내보다 해외에 훨씬 더 많이 수출하는 한국의 경우 대놓고 차별적인 보조금 정책을 취하면 무역 보복을 당할 수 있다”며 “전기차 성능에 따른 보조금 차등 지급 정책을 더욱 강화해 우회적으로 국내 업계를 지원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