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 수입차 국내 판매가 전년 대비 20%가량 감소하면서 업계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에 수요를 상당량 빼앗긴 데다, 올해부터 법인차를 대상으로 시행된 ‘연두색 번호판’ 제도의 영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0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수입차 업체들은 올 1, 2월 국내 내수 시장에서 2만9320대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3만7844대) 대비 22.5% 줄어든 실적이다. 1월 실적(1만3083대)은 11년 만에, 2월 실적(1만6237대)은 5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지난해 1, 2월 16.6%를 차지했던 수입차 업계의 국내 시장 점유율도 올해 같은 기간에는 14.2%에 그쳤다. 지난해 연간 실적이 4.4% 감소하며 4년 만에 역성장을 기록한 수입차 업체들의 부진이 올 들어 더욱 심화한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내수 시장 전체가 얼어붙어서 국산차의 경우에도 올 1, 2월에 6%가량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수입차의 경우에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며 “일부 수입차 브랜드의 경우 사장 교체나 법인 철수까지 거론될 정도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입차 고전의 주요 원인으로는 ‘제네시스의 부상’을 꼽을 수 있다. 2015년 출범한 제네시스는 현재 고급 수입차 시장을 잠식할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가 성장했다. 그런 가운데 제네시스 ‘GV80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와 ‘GV80 쿠페’가 지난해 10월에, ‘G80 페이스리프트’가 올 1월에 출시됐다. 자동차 시장조사 기관인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GV80은 신차 효과 덕에 올 2월 국산차 판매량에서 5위, G80은 8위를 차지했다. 제네시스 브랜드 전체 판매량도 올 1, 2월 전년 대비 21.5% 증가한 2만1931대를 기록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옵션을 추가하지 않은 차량 시작가가 6000만∼7000만 원대에 달하는 고급차가 판매량 톱10에 드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며 “예전에는 수입차 업체들끼리 경쟁하던 것이 이제는 제네시스와도 싸워야 하는 환경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올 1월부터 8000만 원 이상의 고가 법인차에 ‘연두색 번호판’을 달도록 제도가 바뀐 것도 수입차 업계에 타격을 줬다. 세금 혜택을 노리고 법인 명의로 차를 구매해 개인 용도로 타고 다니는 이들을 막고자 ‘연두색 번호판’ 제도가 시행되자 이를 적용받는 차량 판매가 급감한 것이다. KAIDA에 따르면 올 1, 2월에 8000만 원 이상의 수입차 브랜드 법인차의 등록 대수가 6292대로 전년 동기 대비 26.1% 줄었다.
수입 자동차 업계에서는 올해 경기 불확실성과 고금리가 이어지고 있어 수입차 침체가 길어질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온다. 심지어 GV70의 페이스리프트 출시가 올 2분기(4∼6월)에 예고돼 있어 또다시 수요를 빼앗길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서비스센터 부족과 들쭉날쭉한 가격 정책으로 인한 수입차 소비자들의 불만이 여전하다”며 “이에 대한 개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업체는 앞으로 제네시스와 경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