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내연엔진으로 배터리를 충전해 주행거리를 늘린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개발에 다시 나선다. EREV는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순수 전기차에 가까운 친환경 차량으로 평가된다. 전 세계 순수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자 새로운 방식의 차량 포트폴리오를 확보해 전기차 과도기 시대를 대비하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14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과거 EREV를 연구했던 인력들을 다시 불러모으며 EREV 양산을 위한 연구에 나섰다. EREV는 순수 전기차에 가장 가까운 방식의 자동차다.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만으로 움직인다. 순수 전기차와 다른 점은 내연엔진이 장착돼 있다는 점이지만 이 엔진은 전력을 생산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역할만 담당한다. 차량이 움직이는 데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차(H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의 경우 고속이나 장거리 운행 시 내연엔진이 직접 차량을 움직이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전기로만 차량이 구동되는 EREV는 순수 전기차와 똑같은 주행성능을 발휘한다. 내연엔진은 운행 중에 배터리를 충전해 순수 전기차의 짧은 주행거리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일부 EREV는 최대 10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 배터리 용량이 작고 소형 엔진이 탑재돼 제조 원가도 낮출 수 있다. 덕분에 EREV는 2010년대 초 제너럴모터스(GM)와 BMW 등을 중심으로 시장에 출시됐으나, 당시 수요 부족과 보조금 제외 등을 이유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현대차 역시 순수 전기차에 초점을 맞추며 EREV 연구를 중단하고 출시하지 않았다.
현대차가 다시 EREV 연구를 본격화하는 것은 순수 전기차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내연엔진을 활용한 ‘징검다리 모델’ 개발로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2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첫날 전기차 보조금 지원 폐기 명령에 서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은 2030년 내연기관 판매 금지 정책을 5년 연기하는 등 전기차 속도 조절 추세가 강하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이미 중국에서 EREV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며 유행하고 있다”며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나 EREV 같은 차량의 인기가 계속될 전망이라 현대차도 이 기간 수익성을 다양화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제네시스는 2025년 이후 전기차로만 출시하기로 했지만 최근 계획을 틀어 하이브리드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KG모빌리티도 최근까지 EREV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순수 전기차가 아닌 친환경 차량에도 유연한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기주행거리와 탄소 배출량을 고려해 사후에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꼽힌다.
현재 한국은 PHEV 등 하이브리드차량 보조금 지급을 2021년부터 중단했다. 이에 맞춰 현대차도 국내 PHEV 판매를 중단하고 해외에만 판매 중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순수 전기차 시대는 단숨에 오지 않기 때문에 한 단계씩 올라가는 ‘계단식 접근’이 필요하다”며 “전기차 충전 인프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PHEV나 EREV에도 보조금을 지급해 기술 개발과 판매를 촉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