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국내외 제조사 14곳 중 7곳이 공공기관에 화재 예방을 위한 핵심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모듈 온도, 셀 간 전압 편차, 전류 흐름을 막는 저항 등 ‘배터리의 두뇌’로 불리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에서 추출할 수 있는 정보다. 제조사들은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며 정보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내년 2월부터 시행하는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와 ‘배터리 이력제’가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한국교통안전공단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전기차 제조사 14곳 중 7개 업체는 교통안전공단에 BMS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EQE’ 제조사인 메르세데스벤츠를 포함해 볼보, 폴스타, 포르셰, 스텔란티스, 재규어랜드로버, KG모빌리티 등이 해당된다. 이들 제조사가 13일까지 판매한 전기차는 총 3만2056대로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의 8.2%다. 다만 KG모빌리티 관계자는 “아직 신차 출시 후 정기점검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 내년 배터리 인증제와 이력제 시행에 맞춰 BMS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BMS는 배터리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 최적의 조건으로 배터리를 유지해주는 기술이다. 전기차 정기점검 때 배터리 안전성과 성능을 정확히 점검하려면 BMS가 관리하는 배터리 모듈 온도, 열화 상태(열에 의해 변질되는 정도), 셀 간 전압 편차 등의 수치가 필수적이다. BMS 정보를 공단에 제공하지 않는 7개 제조사의 전기차는 배터리 성능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BMS 정보가 없으면 정밀진단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BMS 정보 없이는 내년 2월 시행을 앞둔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와 배터리 이력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배터리 인증제는 전기차 출시 전 배터리가 안전기준에 적합한지 여부에 대해 국토부 장관의 인증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력제는 배터리 점검 이력이나 리콜 여부 등 생애 주기 등을 관리하는 제도다. BMS에 나오는 수치들을 확인해서 평가하고 기록해야 의미가 있다.
정부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 최근 정부는 BMS에 담긴 안전 정보를 공개하는 자동차 회사에 추가 보조금으로 대당 30만 원을 지급하며 정보 공개를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조사들의 반응은 미온적인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배터리 인증제가 시행되면 BMS 정보 없이는 인증 자체가 불가능하니 인증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며 “향후 BMS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BMS 정보 없이는 배터리 성능을 정밀 점검할 수 없으니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가 제조사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16일부터 테슬라코리아도 국토부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모델3와 모델Y에 LG에너지솔루션, 일본 파나소닉, 중국 CATL 배터리를 탑재했다고 밝혔다. 모델X와 모델S에는 일본 파나소닉 배터리를 적용했다. 13일 정부가 국내에서 전기차를 파는 모든 제조사에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도록 권고한 뒤 뒤늦게 테슬라도 참여한 것이다. 테슬라는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전기차 판매대수 기준 점유율이 26.5%로 1위다.
테슬라까지 정보를 공개하면서 국내 21개 전기차 브랜드 모두가 자사 전기차의 배터리 정보를 공개했다. 배터리 정보는 국토교통부 자동차 리콜센터 홈페이지나 각 사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