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제조 왕국의 뿌리인 폭스바겐그룹이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 공장 폐쇄를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전기차의 부상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대란 등이 겹쳐 비용 절감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공장을 폐쇄한 건 36년 전, 미국 웨스트모얼랜드에 있는 공장 하나뿐이다. 독일에서는 1937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일찍이 중국 시장에 진출해 중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했던 폭스바겐이 이젠 장성(長成)한 중국산 자동차의 ‘역공’에 시달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 비용 절감 나서는 세계 2위, 폭스바겐
2일(현지 시간)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 등에 따르면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성명을 내고 “자동차 산업이 몹시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 있다”며 “포괄적인 구조조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공장 폐쇄도 이제는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독일에만 볼프스부르크, 브라운슈바이크, 잘츠기터 등에 6개 공장을 두고 있는 폭스바겐그룹은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 각각 1곳씩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영진은 2029년까지 모든 직원의 고용 상태를 보장하는 ‘고용 안정 협약’을 종료하겠다며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지난해 말 기준 폭스바겐그룹 직원은 전 세계에 68만4025명으로 이 중 29만8687명(43.7%)이 독일에서 근무한다.
현지 매체 슈피겔은 이 조치가 실행되면 현지에서 일자리 약 2만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다니엘라 카발로 노사협의회 의장은 “수익성과 고용 안정성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수십 년간의 합의에 경영진이 의문을 제기했다”며 “우리 일자리와 노동 현장, 단체협약에 대한 공격”이라고 날 선 비판을 내놨다.
● 위기의 獨 자동차-해외 시장 확장 나선 中
게다가 마더팩토리(핵심 생산시설)가 있는 독일의 제조 환경이 어려워진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에너지 비용 상승에 더해 1분기(1∼3월) 전년 동기 대비 실질임금 상승률은 독일 역대 최대치인 3.8%를 기록하는 등 지속적인 비용 압박에 놓여 있다. 블루메 CEO는 “제조업의 본거지로서 독일은 경쟁력 측면에서 더욱 뒤처지고 있다”고도 밝혔다.
이에 따라 폭스바겐은 2022년 상반기(1∼6월) 9.7%이던 영업이익률이 올해 6.3%로 떨어지는 등 고전하고 있다. 그룹 산하 아우디도 비용 절감을 위해 7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8 e트론 생산을 중단하고 이 모델을 만드는 벨기에 브뤼셀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독일 내 생산 비용 부담 증가라는 일차적인 원인에 이어 중국산 저가 전기차와의 경쟁이 이번 구조조정 정책에 방아쇠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