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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대, 진짜 열리냐고? 노르웨이에 물어봐[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입력 2025-01-15 10:00:00업데이트 2025-01-15 10:00:00
2024년 전기차 시장은 주춤했습니다. 테슬라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이 뒷걸음질 쳤고요.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도 전년보다 줄었죠. 중국에선 순수 전기차보다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가 성장을 이끌었고요.

역시 전기차는 비싸고 충전도 어려워서 대중화까지는 갈 길이 먼 걸까요. 미국에선 트럼프 당선자가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예고한 터라 전망마저 암울한데요.

이런 추세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전기차 시대로 질주하는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전기차의 나라, 노르웨이입니다. ‘2025년 전기차 100%’라는 결승선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데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노르웨이의 비법은 바로 당근 정책이죠. 노르웨이 전기차 정책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춥고 산이 많으면 전기차 보급에 불리할까. 노르웨이는 그 편견을 완전히 깼다. 출처 노르웨이 도로교통정보위원회춥고 산이 많으면 전기차 보급에 불리할까. 노르웨이는 그 편견을 완전히 깼다. 출처 노르웨이 도로교통정보위원회
*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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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중 9대가 전기차
88.9%.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팔린 승용차 10대 중 9대는 전기차였습니다. 2023년(82.4%)보다도 크게 늘었죠. 압도적인 세계 1위인데요.

이게 하이브리드는 제외한 순수 전기차만 따진 수치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습니다. 이 나라에서 하이브리드 판매 비중은 지난해 8%였죠. 즉, 순수한 휘발유·경유 차량이 고작 3.1%를 차지했단 뜻입니다. 이 나라에선 내연기관차를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이제 어려워진 거죠.

이런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전기차 많이 타기로 유명한 북유럽 이웃 국가 덴마크(51.5%)나 스웨덴(35%)과도 차이가 크고요.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중국 역시 순수전기차 비율은 지난해 27.3%에 그쳤으니까요.

사실 노르웨이는 도로를 전기차로 채우기엔 기본 환경이 척박합니다. 일단 날씨가 너무 추워요. 북극권 맹추위는 배터리 성능을 급격히 떨어뜨리곤 합니다. 또 국토가 넓고 길다 보니 인구 밀도가 낮습니다. 충전기를 촘촘히 설치하기 쉽지 않단 뜻이죠. 무엇보다 자동차 시장이 이미 성숙한 선진국입니다. 수십 년 동안 휘발유·경유 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습관을 바꿔야만 하는 건데요.

하지만 동시에 노르웨이는 전기차에 유리한 조건도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요.

싸고 안정적이고 풍부한 전기=노르웨이는 대부분 전기를 수력발전으로 생산합니다. 저렴하면서도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전기가 넘쳐나는 나라이죠. 해저 케이블로 다른 나라에 남는 전기를 수출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전기를 충전해 달리는 자동차를 몰기엔 좋은 조건이죠.

노르웨이는 전기가 저렴하기 때문에 특히 차고에 가정용 충전기를 설치한 단독주택 거주자는 유지비용을 상당히 아낄 수 있다. 출처 노르웨이 전기차협회노르웨이는 전기가 저렴하기 때문에 특히 차고에 가정용 충전기를 설치한 단독주택 거주자는 유지비용을 상당히 아낄 수 있다. 출처 노르웨이 전기차협회
기존에 너무 비쌌던 자동차세=노르웨이에선 차를 사는 게 항상 비쌌습니다. 승용차가 대중화된 1960년대 이후로 줄곧 자동차세가 너무 높았죠. 한때는 새 차를 사면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와 등록세 같은 각종 일회성 세금이 구매비용의 50%를 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노르웨이엔 자동차 제조업체가 없고, 전부 다 수입차이잖아요. 정부 입장에서 자동차는 손쉽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대상이었죠. 소비자들은 불만이었지만, 정부는 환경을 명분으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세를 부과해 왔습니다.

20년 넘게 이어진 인센티브
노르웨이의 전기차 지원 정책은 1990년대부터 생겨났습니다. 처음엔 노르웨이 전기차 스타트업 ‘싱크카(Think Car)’를 지원하려는 목적이었죠. 1997년 통행료 면제, 1998년 공공장소 무료 주차, 2001년 부가가치세(25%) 면제까지. 파격적인 혜택이 줄줄이 생겨났는데요. 싱크는 결국 망했지만, 이런 전기차 지원제도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가을. 소형 전기차 신모델이 새롭게 선보이면서 노르웨이 자동차 시장은 격변합니다. 바로 닛산 리프(Leaf)였죠. ‘26만 크로네(약 3300만원)’이란 가격표와 175㎞라는 당시로선 양호한 공식 주행거리에 소비자는 열광했습니다. 동급 폭스바겐 골프보다 가격은 15% 정도 비싸지만, 통행료 면제에 무료 주차라는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니 매력적이었죠. 2013년 리프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 3위에 오릅니다(1위 폭스바겐 골프, 2위 도요타 오리스)

전기차용 고속 충전기가 설치된 노르웨이 주유소의 모습. 출처 노르웨이 전기차협회전기차용 고속 충전기가 설치된 노르웨이 주유소의 모습. 출처 노르웨이 전기차협회
이어 2013년 8월 테슬라가 모델S를 출시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킵니다. 44만6600크로네(약 5700만원)라는 경쟁력 있는 가격을 앞세워 치고 올라왔죠(물론 이후 테슬라는 점차 판매가격을 올렸지만요). 2014년이 되자 노르웨이 전체 신차 판매량 중 12.5%를 전기차가 채웠습니다. 10년 전에 이미 최근 한국이나 미국 시장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거죠.

이런 현상은 노르웨이 소비자들이 특별히 환경 이슈에 민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각자 이익을 따진 선택이었죠. 손익을 계산했을 때 전기차 플러스라는 게 확실하게 보이자, 고민 없이 돌아선 겁니다. 노르웨이에서 전기차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너무 비싼 환경정책?
그리고 이때쯤부터 노르웨이의 전기차 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납니다. 세금 면제 덕분에 전기차 구매가 늘어나는 건 좋은데, 막상 전기차가 너무 잘 팔리니까 세수에 난 구멍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죠. 자동차 탄소배출량 줄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돈을 많이 쓰는 게 과연 맞느냐, 너무 혜택이 과하지 않느냐는 회의론이 나온 겁니다. 실제 2025년 전기차에 대한 세금 감면과 각종 할인 혜택을 모두 합하면 500억 크로네(약 6조4000억원)에 달할 거라고 합니다. 엄청난 금액이긴 하죠.

이를 두고 이웃 나라인 덴마크 기후 장관은 2019년 이렇게 비꼬듯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노르웨이의 전기차 정책)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사용된 가장 비싼 정책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이런 대대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두 가지를 모두 가졌기 때문이죠. 돈과 의지.

이달 초 눈 쌓인 오슬로의 충전소에서 전기차가 충전되는 모습. 추울 땐 배터리 충전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노르웨이에선 겨울에 충전 전 예열 기능 작동이 필수다. 신화통신 뉴시스이달 초 눈 쌓인 오슬로의 충전소에서 전기차가 충전되는 모습. 추울 땐 배터리 충전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노르웨이에선 겨울에 충전 전 예열 기능 작동이 필수다. 신화통신 뉴시스
노르웨이는 막대한 석유 매장량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2023년 정부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얻은 순수입만 166조원에 달한다죠. 다른 나라에 석유 판 돈으로 전기차 구매를 지원한다니. 어찌 보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요.

또 정부는 2050년 탄소배출량을 1990년 대비 90% 이상 줄이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습니다. 2018년 발효된 ‘기후목표법’에서 이를 못 박아 정해뒀을 정도인데요. 이를 위한 중간단계로 2025년엔 승용차 신차 100%를 탄소배출 제로로 만들겠다고도 선언했습니다.

노르웨이는 여전히 돈 많이 드는 전기차 우대 정책을 꿋꿋이 유지 중입니다. 물론 2023년부터 전기차 값 중 50만 크로네(6400만원)가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내도록 하는 등 혜택을 다소 줄이긴 했는데요. 잘 팔리는 차종은 대부분 50만 크로네 이하이기 때문에 여전히 대다수 소비자엔 매력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범위한 인센티브를 구성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예측가능하게 만들 것.” 세실리 크니베 크로글룬드 교통부 차관은 노르웨이의 전기차 성공 교훈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일관된 정책은 게임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법이죠.

노르웨이에서 전기차는 오랫동안 부가가치세와 등록세 면제 대상이었다. 출처 노르웨이 전기차협회노르웨이에서 전기차는 오랫동안 부가가치세와 등록세 면제 대상이었다. 출처 노르웨이 전기차협회
참고로 노르웨이 방식을 따라 해서 최근 성공을 거둔 나라가 있는데요. 바로 (2019년에 장관이 노르웨이 정책을 비웃었던 그) 덴마크입니다. 이 나라는 2020년 정치적 합의를 통해 노르웨이와 비슷한 전기차 세금 면제 정책을 도입했죠. 그리고 이후 4년. 덴마크에서 전기차 판매 비중은 2020년 7.2%에서 2024년 51.5%로 수직상승합니다.

‘승용차 탄소배출 제로’의 꿈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노르웨이에선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이제 현대차·푸조·오펠·피아트·렉서스 같은 전통 브랜드도 노르웨이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아예 중단했고요. 주유소들은 충전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유기를 일부 뜯어내는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편의점에선 30분의 충전시간 동안 손님들이 먹을 만한 좀 더 제대로 된 식사 메뉴를 팔기 시작했고요. 자동차 정비소는 이제 기름때 얼룩을 옷에 묻힐 일이 없는 배터리 기술자를 채용합니다. 이 나라엔 여전히 많은 내연기관차가 달리고 있지만 점점 늙어가고 있습니다. 경유차는 평균 연령이 13.2년, 휘발유차는 무려 19년이나 되죠.

한때 “미친 짓”으로 손가락질받았던 2025년 무공해차 100% 목표는 이젠 손에 잡힐 듯합니다. 물론 완전한 100%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 노르웨이 정부가 휘발유·경유 승용차를 못 팔게 규제하는 건 아니니까요.

대신 올해 4월 1일부터 전기차가 아닌 차량을 살 때 내는 등록세가 올라갑니다. 내연기관차는 평균 1만4500크로네(185만원),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평균 4만5000크로네(576만원)나 세금이 더 붙는다죠. 이건 거의 하이브리드카의 멸종 선언과 다름없는 조치라 하겠는데요. 당근책(인센티브)을 유지한 채 채찍까지 휘두르니 효과는 뻔합니다. 노르웨이 전기자동차협회의 크리스티나 부 회장은 이렇게 승리를 예상하죠. “2025년은 우리의 희년(성스러운 해)이 될 것입니다.”

그럼 이 세계 최초 전기차 왕국에서 승자는 누구일까요. 일단 2024년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는 단연 테슬라인데요. 폭스바겐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2021년부터 줄곧 1위 브랜드 자리를 지킵니다.

다만 테슬라 점유율은 2023년보다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만만찮은 도전자들이 선전 중이기 때문인데요. 지난해엔 볼보가 신형 전기차 EX3를 앞세워 시장을 넓혀갔고요. 후발주자인 중국 전기차 브랜드(BYD, 샤오펑, 니오, 지커 등)도 오슬로 핵심 지역에 쇼룸을 열고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있죠. 이런 중국 브랜드를 모두 합치면 약 10% 점유율을 기록합니다.

2025년도 경쟁은 대단히 치열할 겁니다. 이 나라에서 팔리는 전기차 모델만 이제 160개가 넘습니다. 올해 가장 먼저 치고 나온 건 현대차이죠. 노르웨이에서 잘 팔리는 소형 전기 SUV 코나 가격을 새해에 4만 크로네(512만원)나 할인하고 나섰습니다. 도요타의 야심작인 ‘어반 크루저’ 전기차와의 대결을 준비하는 건데요. 어반 크루저는 ‘2025년 마지막 남은 휘발유차 모델(주로 도요타 브랜드)을 노르웨이에서 밀어낼 기대주’로 꼽히는 모델이라 긴장해야 합니다.

테슬라 모델Y의 부분변경 모델 주니퍼가 올해 선보이죠. 벌써부터 2025년 판매 1위는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또 단종된 소형 해치백 ‘폴로’의 대체제로 꼽히는 폭스바겐 소형 전기차 ID.2 역시 출격을 준비 중이고요. 말 그대로 새로운 전기차가 쏟아져 나옵니다. 2025년 노르웨이 전기차 시장이 세울 신기록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By.딥다이브

노르웨이 전기차 시장을 2년 만에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전기차 100%’라는 목표를 사실상 달성하게 될 거란 자신감은 훨씬 높아졌는데요. 마침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 폐지론이 나오는 터라, 더 대비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전기차 천국, 노르웨이가 2024년엔 전기차 판매 비중 88.9%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춥고 넓어서 전기차 보급에 불리하다는 인식을 깼습니다.

-20년 넘게 이어진 전기차 지원 정책이 빛을 본 건 10여 년 전부터.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괜찮은 전기차 모델과 결합되면서 붐이 일어납니다.

-물론 돈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정부의 의지와 재정적 부유함이 뒷받침됐습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가 없기 때문에 정책이 오히려 일관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 나라에선 전기차를 사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2025년에도 내연기관차 판매가 금지되진 않지만, 사실상 전기차만 팔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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