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부산고등법원 제6민사부(박운삼 판사)는 지난 6일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및 지회 노조원 김모 씨 등을 상대로 불법 쟁의행위로 비롯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차 측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모 씨 등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 현대차 울산공장 의장라인 등을 불법으로 멈춰 세웠다. 이후 현대차는 매출 감소와 고정비용 손실 등 이 기간 발생한 회사 손해에 대해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약 10년에 걸친 소송 끝에 노조 측이 회사 손해에 대해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사실상 동일 건에 대한 형사재판 유죄 판결(2015년)과 상반되는 민사재판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실제로 김 씨 등 복수의 노조원들은 이미 수년 전 해당 불법점거를 포함해 수차례 공장 불법점거 행위를 저질렀고 형사재판에서 벌금형 유죄가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4년 10월 울산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듬해 7월 부산고법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현대차의 경우 해당 불법행위로 인해 생산라인 가동을 멈춰야했고 피해복구에도 비용이 들었다. 인건비와 보험료 등 각종 손실이 불가피했다.

이후 부산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피해가 회복됐다는 노조 측 주장을 수용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해당 공장 불법점거로 인한 손실 만회를 위한 추가 생산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노조 측 주장만 수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안이지만 피해 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형사와 민사 판단이 상충되는 법적불일치 상황이 초래됐다는 평가도 있다.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민법의 기본 원칙으로 꼽히는 ‘입증책임의 원칙’을 도외시했다는 비판도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노조 주장을 수용하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파업 후 추가 생산으로 부족분이 만회됐는지 여부를 노조 측이 증명해야 하는데 불법점거 행위로 인한 생산 차질을 입증한 회사 측과 달리 노조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불법 쟁의행위가 일어났던 2012년 8월 생산량이 당초 계획한 물량보다 1만2700대 적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연간 기준으로 계획보다 3300대가 더 생산돼 불법 쟁의행위 후 추가 생산이 이뤄져 손해가 만회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현대차는 매년 초 발표하는 계획 생산량은 미확정 단순 목표치에 불과하고 실제 운영계획 상으로는 1만6000대 넘는 생산량 손실이 발생했다고 각종 증거를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재판부는 현대차가 ‘주문생산방식’으로 일시적 생산 지연에도 고객이 곧바로 매매계약을 취소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고 이에 따라 매출 감소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현대차는 업계 관행으로 주문이 없더라도 일정 물량 이상 재고를 확보한다고 증거를 제시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은 노조 등의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적 배상 책임을 면제한 사례로 비춰질 수 있다”며 “이번 판결이 불법 쟁의행위를 조장하는 사례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범 동아닷컴 기자 mb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