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는 브랜드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만든 우라칸 특별 모델을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 선보이고 판매를 시작했다. 람보르기니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4월 17일부터 23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신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연례 디자인 행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밀라노 디자인위크가 열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잠시 주춤했던 행사는 올해 이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았다. 그 덕분에 행사의 전통적 중심이었던 가구를 비롯해 패션, 건축, IT, 자동차 등 생활과 관련한 디자인의 거의 모든 분야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축제였다.최근에는 자동차 업체들이 밀라노 디자인위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럭셔리 카 브랜드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번 행사를 통해 특별한 모델을 공개하거나 자동차 이외의 장르에서 브랜드 성격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람보르기니는 밀라노 세게리아에 특별히 마련한 전시 공간에서 60주년 기념 특별 모델을 공개했다. 특별 모델은 2인승 스포츠카 우라칸(Huracan)의 세 가지 변형 모델인 우라칸 STO, 우라칸 테크니카,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를 바탕으로 브랜드 60년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요소들로 색다르게 꾸몄다.
우라칸 가운데 가장 성능이 강력한 우라칸 STO를 바탕으로 만든 모델은 고성능과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꾸밈새가 돋보인다. 외부는 서로 다른 주제로 조합한 두 가지 색 구성을 마련하고, 부분적으로 차체에 쓰인 탄소섬유 소재를 노출시키는 한편 무광 검은색 알루미늄 휠을 달아 강인한 느낌을 강조했다. 성능과 스타일을 고루 높은 수준으로 추구한 우라칸 테크니카의 60주년 기념 모델도 모터스포츠 이미지와 이탈리아 국기를 이루는 세 가지 색깔을 활용해 두 가지 주제로 실내외를 치장했다. 화려함이 돋보이는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는 60주년 기념 모델에서 파란색과 흰색, 흰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차체와 화려한 색이 펼쳐진 실내를 자랑한다.
세 모델 모두 60대씩 한정 판매되고, 특별함을 나타내기 위해 한정 모델임을 나타내는 숫자를 새긴 탄소섬유 명판을 붙이고 좌석과 도어 안쪽에 60주년 기념 로고를 수놓았다. 람보르기니는 60주년 기념 모델을 공개하면서 최근 출시한 첫 하이브리드 모델인 레부엘토(Revuelto)도 함께 전시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마세라티가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 공개한 그란투리스모 원 오프 프리스마(왼쪽)와 원 오프 루체. 마세라티 제공
마세라티는 새단장한 밀라노 전시장에서 홍보대사인 데이비드 베컴과 2021년 이후 협업하고 있는 아티스트 후지와라 히로시 등이 동석해 특별한 차들을 선보였다. 고성능 럭셔리 카를 대표하는 장르인 그란투리스모를 만들기 시작한 지 75년이 된 것을 기념해 역사적 모델에서 영감을 얻어 서로 다른 주제로 특별히 한 대씩만 제작한 그란투리스모 원 오프(One Off) 모델 세 대가 주인공이었다.원 오프 모델은 프리스마(Prisma), 루체(Luce), 우로보로스(Ouroboros)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가운데 프리스마와 루체는 실제 차로 만들어져 전시됐다. 최신 V6 엔진을 얹은 프리스마는 역대 마세라티 차에 쓰인 것 가운데 상징적인 색깔 12가지와 기념의 의미를 담은 두 가지 색을 골라 의미 있는 글씨와 더불어 수작업으로 차체를 칠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주제 삼아 순수 전기차로 만든 루체는 차체 표면을 크롬 코팅하고 레이저로 패턴을 넣어 미래적 분위기와 고전적 분위기를 모두 담았다. 아울러 내부는 재활용 소재로 만든 섬유에 레이저 가공으로 그래픽을 넣고, 3D프린팅과 비슷한 공정으로 직물을 입히는 등 색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우로보로스는 후지와라 히로시가 마세라티의 맞춤 제작 프로그램인 푸오리세리에를 통해 가상 공간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꾸민 디지털 모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휠과 공기 배출구 등은 역대 마세라티 유명 모델들의 요소를 넣은 반면 단순하고도 강렬한 꾸밈새에는 히로시가 만든 프래그먼트 디자인의 특징이 반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벤틀리는 2023 벤틀리 홈 컬렉션 가구로 밀라노 디자인위크 관람객을 맞이했다. 벤틀리 제공
벤틀리는 자동차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관람객을 맞았다. 브랜드의 디자인과 품질을 생활 영역으로 확장한 벤틀리 홈(Bentley Home) 컬렉션이 새로운 제품군을 선보인 것이다. 벤틀리 홈은 2013년에 벤틀리 디자인팀과 이탈리아의 럭셔리 가구 및 라이프스타일 제품 전문 업체인 럭셔리 리빙 그룹의 협업으로 만들어졌고, 2022년에 밀라노에 처음으로 벤틀리 홈 아틀리에를 연 바 있다.이번에 새로 선보인 제품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및 건축가와의 협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페데리코 페리(Federico Peri)가 디자인한 테이블과 식탁, 건축가 카를로 콜롬보(Carlo Colombo)가 디자인한 소파와 안락의자, 벤틀리 홈이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침대 등 일곱 가지 제품군은 모두 벤틀리를 상징하는 선과 색, 패턴 등을 반영해 고급스럽고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밀라노 디자인위크 기간 중 있었던 카 디자인 어워드에서 양산차 부문 최고의 차로 선정된 페라리 푸로산게. 페라리 제공
한편 페라리는 이번 디자인 위크 기간 중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 전문지 오토앤디자인(Auto&Design)이 주관하는 카 디자인 어워드(Car Design Award) 2023에서 두 개 부문을 수상했다. 카 디자인 어워드는 1984년부터 시작돼 역사가 40년에 이르고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공정성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카 디자인 어워드는 양산차, 콘셉트 카, 브랜드 디자인 언어 부문으로 나뉘는데 페라리는 양산차 부문에서 지난해 내놓은 4도어 4인승 스포츠카 푸로산게가, 브랜드 디자인 언어 부문에서는 페라리 스타일링 센터팀이 수상했다. 푸로산게는 SUV로는 놀라운 차체 비례와 독특한 도어에 힘입어 뛰어난 승하차 편의성과 실내 공간, 페라리다운 특별함이 선정 이유로 꼽혔다. 아울러 심사위원단은 브랜드 디자인 언어 부문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진화와 혁신을 거듭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럭셔리 카 브랜드 외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 자동차 업체가 밀라노에서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과 역량을 보여줬다. 자동차 업계에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기술 분야를 대표하는 이벤트가 된 것처럼 밀라노 디자인위크는 디자인 분야에서 모터쇼를 대신하는 이벤트로 자리를 잡고 있는 분위기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과 자동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자동차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과 언어도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