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헨델 이사가 조수석에 앉은 기자에게 자료를 건네기 위해 운전대에서 두 손을 뗐지만 차는 흔들림 없이 차로를 유지하며 내달렸다.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운전하던 서대영 상사(진구)가 윤명주 중위(김지원)에게 다가가려고 운전대에서 손을 뗐던 장면이 실제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다만 10초 정도 지나자 ‘운전대를 잡으라’는 경고 메시지가 계기반에 떴다. 이 차는 운전자가 손을 완전히 떼고 다니는 완성형 자율주행 직전 수준으로 세팅돼 일정 시간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면 안전경고를 보낸다. 자율차량에 걸맞은 도로주행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한 설계다.
헨델 이사가 졸음운전을 하듯 운전대를 틀어 차를 차로 옆으로 붙일 때마다 차는 저절로 차로 중앙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살짝 당겨진 용수철이 부드럽게 되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깜빡이를 켜고 운전대를 살짝 돌리자 스스로 속력을 높여 차로를 바꾼 뒤 앞차를 추월하기도 했다. 헨델 이사는 “자율차량의 추월 기술은 아직까지 볼보만이 갖춘 기술”이라며 “올 6월까지는 스웨덴에서 본격적인 판매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람 대신 AI가 차량을 운전하는 ‘AI 드라이버 시대’의 막이 올랐다. 미국 유럽 등은 이르면 2020년 완성형 자율주행차를 시장에 내놓겠다며 기술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한국은 이 경쟁에서 10년 정도 뒤처졌다.
○ 자율주행차로 안전과 여유를 높이다

볼보는 6월부터는 현재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판매하되 2025년까지는 사람 없이 운전하는 완성형 자율주행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최근 전기차 사전 예약 돌풍을 일으킨 미국의 테슬라모터스,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이런 단계별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 문영준 한국교통연구원 교통기술연구소장은 “단계별로 기술을 내놓으면 소비자가 자율주행차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관련 산업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볼보는 자율주행차 등 교통 혁신을 통해 통근 체증, 노인 운전자 사고, 어린이 교통사고 등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 친화적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발표한 ‘콘셉트 26’ 전략. 직장인들이 출퇴근길에 운전석에서 쓰는 평균 26분의 시간을 자율주행 기술을 통해 책을 읽거나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복지 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자율주행차가 고령 운전자들의 든든한 ‘운전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가 주변 차량 속도, 방향 등을 조절해 운전해주기 때문이다. 실란 데미르 볼보자동차 자율주행차 프로그램 매니저는 “자율주행차는 고령자, 장애인, 운전면허증이 없는 운전자를 위한 차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한국은 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사고 비율이 2010년 5.6%에서 2014년 9.1%로 증가했다.
○ 자율주행차에 맞게 도시도 리모델링

예테보리는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경제포럼(WEF)이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해 도시계획을 세우는 모범 사례로 꼽은 곳이다.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한 ‘도시 리모델링’을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보는 내년 정부, 학계와 함께 예테보리 자율주행 전용도로에서 자율주행차 100대를 운행하며 주변 운전자들의 반응과 법적 문제를 연구하고 도로와 교통 법규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연구하는 ‘드라이버 미’ 프로젝트를 본격화한다.
중앙정부는 지난해 기업, 학계 등과 손잡고 미래 교통 전략을 새로 짜는 ‘드라이브 스웨덴’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자율주행차 시험주행을 위한 법을 마련했고, 자율주행차 상업화를 위한 법도 11월까지 준비할 계획이다. 드라이브 스웨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연구기관 ‘빅토리아’의 켄트 에릭 랑 박사는 “기술을 뒤따라가며 사후 조정을 하기 바쁘던 정부가 교통의 급격한 변화를 인식하고 ‘미래교통 백서’와 대형 프로젝트를 선제적으로 발표하며 오히려 기업의 변화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테보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