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수백억 과징금 때릴 사안을 경고로 끝낸 공정위

박민우 기자
입력 2016-05-20 03:00:00 업데이트 2023-05-10 02:01:41
현대자동차그룹에 순환출자 금지 위반을 ‘늑장 통보’했던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 없이 경고 조치를 내렸다.

공정위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에 소속된 현대차와 기아차의 순환출자 금지 규정 위반행위에 대해 경고 조치했다고 19일 밝혔다. 과징금을 최대 460억 원까지 부과할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공정위가 관련 지분 처분시한을 불과 11일 앞두고 현대차에 순환출자로 강화된 고리를 해소하라고 통보한 점이 참작돼 제재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

2015년 12월 30일자 A1면.2015년 12월 30일자 A1면.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24일 현대차에 “7월 1일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으로 강화된 순환출자 지분(약 4600억 원어치)을 처분 시한인 2016년 1월 4일까지 팔아야 한다”고 늑장 통보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말 합병 건이 순환출자 고리 강화에 해당하는지 문의했지만 공정위는 처분시한 막바지에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수일 내 현대제철 주식 880만 주를 매각해야 했던 현대차는 결국 처분시한을 32일 넘긴 2월 5일에야 주식을 팔았다.

순환출자 금지제도에 따라 처분시한을 넘길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 벌금, 또는 위반 주식 취득가액의 10% 이내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순환출자 금지제도 시행 이후 첫 사례로 공정위 유권해석(2015년 12월 24일) 전까지 해소 대상인지 여부가 확정되기 곤란한 측면이 있었다”며 “법 위반의 정도가 경미하고 위반 행위를 스스로 시정해 시정 조치의 실익이 없다는 점 등이 인정돼 경고 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늑장 통보로 스스로 곤욕을 자초했던 공정위가 5개월 만에 실효성 없는 조치를 내렸다는 비판이 공정위 안팎에서 나온다.

공정위가 미숙한 사건 처리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건 이번만이 아니다. 최근 6개월간 공정위는 야심차게 준비했던 사건 처리 과정에서 번번이 체면을 구겼다. 현대차가 순환출자 금지를 위반했다고 뒤늦게 유권해석을 내린 날 라면값 담합 과징금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올해 3월 SK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과징금 소송에서도 잇달아 지면서 앞서 부과했던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을 돌려줘야 했다.

올해 4월에는 벤처기업 카카오의 대기업집단 신규 지정이 논란이 됐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2009년 자산 5조 원 이상으로 변경한 뒤 8년째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최근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부랴부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또 같은 달 미국계 정보기술(IT) 기업 오러클의 ‘끼워 팔기’ 건을 무혐의 처리해 미국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이 구글 반독점법 위반 판단을 내리면서 비슷한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공정위 판결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과징금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면서 공정위 조사나 전원회의 심사가 다소 신중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퀄컴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전담팀의 부담감도 상당하다”고 해명했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첩첩산중’이다. 공정위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기업결합 심사가 5개월 넘게 계속되면서 일각에서는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가 3년 반이나 시간을 끌었던 시중은행들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건의 최종 결론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돼 있다.

세종=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