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더 큐어’의 초반부 장면이다. 영화에서 퇴폐미를 가득 발산하는 데인 드한이 연기하는 주인공 ‘록하트’는 벤츠 뒤에서도 노트북을 두드리며 일에 열심이다. 운전사가 “이 요양원에는 성공한 사람들만 온다”고 설명하자 별 거 아니라는 듯 “가격이 비싼가보군요”하고 심드렁하게 받아친다.
역시 이런 심오한 공간에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제격이긴 하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차는 벤츠긴 한데 상당히 각지고 디자인도 예스럽다. 모델명이 써 있지 않아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리어램프의 모양으로 볼 때 S 클래스의 1세대(W116) 혹은 2세대(W126) 모델과 비슷한 모습이다. 1970∼1980년대에 주로 생산된 모델이니 이젠 클래식카로 구분해도 될 것 같다.
이 벤츠는 오래된 모델인데도 현대물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잘 어울린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일을 처리하는 증권맨과 1800년대 후반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고성은 벤츠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같은 고급차 브랜드지만 좀 더 젊고 최첨단을 추구하는 BMW와는 다른 이미지다.
지금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벤츠의 저력은 이 같이 무게감 있는 이미지에서 나온 것 아닐까 싶다. 한때 노회한 회장님만 타고 다닐 것 같은 이미지를 깨기 위해 최대한 ‘젊음’을 강조하던 벤츠는 이제 모든 연령층의 마음을 잡는 데 성공한 듯하다.
영화 속에서 벤츠는 록하트를 영화의 주 무대인 요양원까지 안내하고 또 그가 요양원에 머물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오래된 벤츠가 풍기는 분위기처럼 차분하고 신비한 스위스 고성은 종국에는 추악한 진실을 드러내고 만다.
중간에는 이 벤츠보다 오래돼 보이는 벤틀리의 클래식 모델도 등장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벤틀리가 풍기는 분위기와 벤츠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