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6일 경기 오산시 현충로 SK엔카직영 오산동탄지점. 국내 중고차 진단 고수를 찾는 ‘제6회 SK엔카직영 중고차 진단 경연대회’에 참가한 10년 차 베테랑 평가사 이상원 실장은 중고차 진단을 병을 찾아내는 일에 비유했다. 중고차 평가사는 중고차를 매입하고 팔 때 중고차 상태를 진단하는 전문가들이다.
이 자리에서는 전국에서 예선전을 거쳐 올라온 SK엔카직영 지점별 대표 28명이 실력을 겨뤘다. 대회 현장에는 중고차 총 15대가 있었다. 평가사들은 무작위로 차 5대를 배정받아 총 50분 동안 차를 진단했다. 평가사들은 배정받은 차에 어떤 문제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으로 환자가 의사에게 다짜고짜 ‘제가 어디가 아픈지 맞혀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실장은 “사람은 아프면 아프다고 하지만, 차를 팔려는 사람은 차의 문제를 숨기려 한다는 점에서 진료와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차 상태를 좋게 포장하려는 사람부터 “평가사가 문제를 찾아야지 고객한테 문제를 물어보면 되느냐”고 따지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평가사들은 최대한 숨기려는 고객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셈이다.
징 소리가 울려 퍼지며 대회가 시작됐다. 평가사들은 손전등과 자 등 각종 평가도구를 들고 바삐 움직였다. “아, 애매하네?” “뭐 이렇게 하자가 많아?” 난해한 문제가 많은지 곳곳에서 짧은 탄성이 들렸다. 평가사들은 차창 틈을 자로 벌려 손전등을 비추거나 차 문을 감싼 고무까지 뜯어 상태를 확인했다. 아예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차량 제조사별로 고유의 접착 및 조립 방식이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는 것이다. 원래 방식과 다르게 처리돼 있으면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평가는 차가 사고가 났었는지를 판단하는 사고 진단과 누유나 엔진, 변속기 등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판단하는 성능 진단, 편의장치와 소모품 등을 살펴보는 진단 등으로 이뤄졌다. 사고 유무 및 중대한 결함은 중고차의 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한 평가사는 “사고가 난 2대의 차량에서 멀쩡한 앞뒤 부분을 이어 붙이는 경우도 있어요. 수리 기술이 날로 좋아져서 감쪽같아요.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어요. 실력 있는 평가사들이 중요한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SK엔카직영은 중고차 매입과 성능 평가, 판매 단계에서 총 3번 중고차를 진단한다. 3번에 걸친 진단에도 불구하고 중고차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은 SK엔카직영이 진다. SK엔카직영 영업관리팀 원동민 대리는 “평가사들의 진단이 자동차값은 물론이고 회사의 수익 및 신뢰도와 직결된다”며 “진단 노하우는 평가사들만의 자산이지만, 이런 대회를 통해 진단 노하우를 공유하며 서로의 실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회 1등은 김포지점 전용호 평가사가 차지했다. 전 평가사는 “내가 본 것과 판단한 것을 믿고 진단의 기본을 잊지 말라고 한 선배의 조언을 새기면서 평가에 임했다”며 “정상 차량을 최대한 많이 살펴보며 중고차와 비교하고, 평소 길을 다닐 때에도 차의 상태를 살피고 묻곤 했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 4년 차로 역대 최소 경력 우승자라는 명예도 얻었다. 전 평가사는 “배정받은 차 중에 부식이 많은 차가 있었는데 판금을 한 건지, 교환한 건지 헷갈렸지만 스스로 체득한 노하우에 자신감을 갖고 문제를 풀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즉흥적으로 기자의 차를 진단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 평가사는 약 10분 정도 차를 진단하더니 “아무리 찾아봐도 사고나 교환의 흔적이 없는 것 같다. 못 찾은 것일 수도 있는데, 이 차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의 차는 단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다. 우승자에게는 트로피와 함께 300만 원의 상금, 수석평가사 명판이 주어졌다. 2등은 부산지점 손금성 평가사가, 3등은 천안지점 서찬모 평가사가 각각 차지했다.
오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