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업체들은 때로는 높은 출력을 얻으려고, 때로는 엔진이 만들어내는 진동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실린더 수를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 엔진 관련 기술 수준이 낮을 때는 그것이 엔진에서 원하는 특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엔진 실린더 수가 적은 것과 많은 것의 특성 차이가 뚜렷했다.
엔진 관련 기술이 발전한 이후로는 격차가 많이 줄었지만 실린더 수가 작고 배기량이 작은 엔진과 실린더 수가 많고 배기량이 큰 엔진 사이에는 여전히 물리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높은 출력과 적은 진동이라는 특성이 공존할 수 있는 가장 기본 개념이 실린더 수를 늘리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대량생산되고 있는 승용차 가운데 엔진 실린더 수가 가장 많은 것은 초호화 초고성능 스포츠카인 ‘부가티 시론’이다. 시론을 움직이는 8.0L 엔진의 실린더 수는 무려 16개다. 1500마력에 이르는 출력으로 2인승 스포츠카를 시속 40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게 한다. 이렇게 실린더가 많은 것은 자동차에서도 아주 예외적이어서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고급차의 엔진은 12기통이 한계다. 실린더가 많을수록 효율이나 성능, 복잡한 구조로 인한 설계와 생산의 어려움 등 여러 면에서 단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용적 관점에서는 흠이 될 수 있는 이런 특성은 럭셔리나 프리미엄 브랜드 차에서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V12 엔진 고유의 장점과 대중적 자동차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 소비자들의 만족감을 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엔진 기술 발전 덕분에 출력 면에서는 6기통이나 8기통만으로도 V12 엔진을 능가하는 성능을 내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도 갈수록 강화되는 세계 여러 나라의 배기가스와 연비 관련 규제는 다기통 대배기량 엔진이 설 자리를 점점 좁히고 있다.
기업평균연비(CAFE) 기준을 위반하면 벌금을 내야하는 미국이 대표적인 예다. 생산과 판매량은 적지만 수익을 충분히 내는 럭셔리 및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기꺼이’ 벌금을 내 왔지만 판매대수에 비례해 벌금 액수가 커지므로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때문에 V12 엔진을 포기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메르세데스-AMG와 BMW가 대표적이다. 이 두 브랜드는 지금 판매하고 있는 차량 이후로 V12 엔진 모델을 내놓지 않을 계획이다. 고성능 브랜드인 메르세데스-AMG는 이미 V8 4.0L 트윈터보 엔진으로 V12 6.0L 트윈터보 엔진을 능가하는 성능을 낼 수 있다. 엔진이 작고 가벼울수록 역동적인 주행 특성을 만들어내기에 유리한 점도 있다. 물론 메르세데스-벤츠는 브랜드 성격에 따라 미래 전략을 달리하기 때문에 최고급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최고급 모델인 ‘S 650’에서는 V12 엔진의 명맥이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BMW의 이유는 좀 더 현실적이다. 배기가스 규제에 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현재 BMW 브랜드로 팔리고 있는 V12 엔진 모델은 ‘M760Li xDrive’ 하나뿐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BMW가 조만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로 V12 엔진의 공백을 보완할 것이란 예측을 하고 있다.
사실 판매량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에게는 V12 엔진이 계륵 같은 존재이다. 판매 대수가 많지 않은 만큼 개발과 생산에 들이는 비용 대비 수익을 충분히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 중에서는 V12 엔진에 대한 입장이 굳건한 경우도 많다. 점점 V12 엔진을 포기하는 브랜드들이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지금의 V12 엔진 차가 점점 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V12 엔진을 개발하는 업체도 있다. 애스턴 마틴은 2016년 새로 선보인 ‘DB11’부터 새로 개발한 V12 5.2L 트윈터보 엔진을 쓰기 시작했다. 애스턴 마틴은 메르세데스-AMG로부터 V8 엔진을 공급받지만 최상위 모델에 쓰는 V12 엔진은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생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DB11을 시작으로 다른 모델에도 쓰일 예정인 새 엔진은 현재 시판되는 승용차에 쓰이는 V12 엔진 중 가장 새것이다. 다른 업체의 엔진들은 대부분 이전에 쓰이던 것을 꾸준히 개선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애스턴 마틴의 것은 거의 백지 상태에서 새로 개발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러 럭셔리 브랜드의 책임자들은 한결같이 V12 엔진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직 많은 소비자가 V12 엔진 모델을 고집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이브리드 같은 전동화 기술을 더하더라도 V12 엔진의 명맥은 이어질 듯하다. V12 엔진은 여전히 특별한 차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 같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