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모빌리티 시장에서 글로벌 상위권 업체로 도약에 나선 상황이었다. 중국 시장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점유율은 테슬라(27%)에 이어 2위(14%)까지 상승했다. 현대 아이오닉 5와 기아 EV6는 자동차 관련 각종 상을 휩쓸며 세계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IRA 발효로 현대차·기아 전기차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전량 국내에서 생산되는 현대차·기아 전기차의 미국 현지 판매가격은 대당 4만 달러(약 5320만 원) 안팎. 차량 가격의 20%에 육박하는 보조금 약 7500달러(약 1000만 원)는 아무리 현대차·기아 전기차의 품질이 좋아도 소비자들의 선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현재는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 효과가 있고, 인센티브(판매 촉진 비용) 확대라는 카드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가격 경쟁력 상실에 따른 판매량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IRA는 당장 현대차그룹에 악재지만, 중장기적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5월 21조 원을 투자해 한국을 전기차 허브로 키우고, 2030년 글로벌 전기차 생산량의 45%인 144만 대를 국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IRA로 이 같은 계획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국내 투자를 줄이고 미국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는 투자 축소, R&D(연구개발) 역량 감소, 일자리 감소 등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되어 IRA에 대응했어야 했다.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IRA가 공개된 지 약 3주 만에 발효돼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번 뒤처지기 시작하면 끝을 맞는 냉엄한 글로벌 시장에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늦었지만, 최악을 피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IRA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건혁·산업1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