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람보르기니의 V12 엔진은 내년 출시 예정인 아벤타도르의 후속 모델에도 쓰인다. 그러나 새 모델은 엔진과 함께 구동용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결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췄다. 즉 앞으로 나올 람보르기니 고성능 모델에서 순수하게 휘발유만으로 동력을 얻는 V12 엔진은 볼 수 없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는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특정 상황에서는 전기 모터로만 달릴 수 있다. 판매량이 많지 않은 럭셔리 스포츠카라 하더라도, 갈수록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려면 엔진 사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럭셔리 자동차 업체는 순수 전기차 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이들과 달리 스포츠카 업체들은 곤란한 입장이다. 고유의 기술과 엔진 특유의 감성으로 다른 차들과 차별화해온 만큼 브랜드 철학과 전통의 중심인 엔진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배기량이 크고 강력한 V12 엔진 모델을 전동화한 람보르기니를 비롯해 페라리 역시 주력 모델들에 V6 및 V8 엔진과 전기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라리가 최근 내놓은 푸로산게에 전통적인 자연흡기 V12 엔진을 얹은 것을 비롯해, “규제가 허용할 때까지 V12 엔진을 계속 쓸 것이다”라는 롤스로이스, 새로 개발한 V12 엔진을 당분간 쓰기로 한 애스턴 마틴 등의 움직임은 엔진과 전동화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환경 특성을 내세운 합성연료들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휘발유에 식물성 알코올을 일정 비율 섞은 것이나 경유와 자연 유래 기름을 섞은 바이오 디젤 등이 대표적이다. 그와 같은 합성연료는 기본적으로 화석연료가 바탕이 되는 만큼 친환경 특성은 제한적이었다.
이퓨얼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쓰고, 공정에 필요한 전기를 태양광이나 풍력 등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에서 얻는다. 즉 다른 연료들처럼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만, 연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탄소중립 특성을 갖는다. 나아가 정제 과정에서 걸러지지 못하는 성분들이 남아 있는 화석연료들과 달리, 화학적 합성을 통해 순도 높은 연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배출가스에 유해성분이 섞여 나올 가능성도 아주 적다. 내연기관의 지속 가능성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이상적인 해법인 셈이다.

이퓨얼이 경제성을 얻게 된다면 내연기관의 수명은 좀 더 길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업체들에는 순수 전기차 기술 개발과 생산 시스템을 갖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러나 이퓨얼 대중화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쪽은 이미 내연기관 차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특히 소장 가치가 높은 클래식카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퓨얼만큼 반가운 존재도 없을 것이다. 클래식카는 원래 모습으로 달릴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이퓨얼은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자동차의 역사를 지키는 유일한 해법이나 다름없다.

올해 행사에는 처음으로 참가 차 가운데 한 대인 1904년형 코버트가 이퓨얼을 연료로 써서 전 구간 완주에 성공했다. 행사 직전에 이퓨얼을 넣고 짧은 구간 시험주행을 했을 뿐,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은 차가 특별한 개조나 수리 없이 완주한 것은 이퓨얼의 가능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퓨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없지는 않다. 환경단체들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 차를 전기차로 개조하기 위해 전기 모터나 배터리 등 전기차에 필요한 장치들을 만드는 데에도 자원과 에너지는 쓰이기 마련이다. 전동화가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이퓨얼과 같은 현실적 대안에 대한 생각도 필요하다. 미래가 반드시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